“정권 탄핵” “좌파 정화”…학생 위한다면서 정쟁 펼치는 교육감 후보들

공성윤 기자 2024. 9. 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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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공천 금지된 교육감 선거에 또 다시 퍼지는 ‘색깔론’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보궐선거로 치러져 정당 색깔이 옅을 것으로 기대됐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결국 또 진영 논리에 물들고 있다. 일부 후보는 특정 정당과의 관계를 시사하거나 해묵은 '좌파우파론'을 꺼내 들었다. 교육계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정권 탄핵" 구호가 표출되기도 했다.

22일 오전 서울 종로의 한 버스정류장에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는 사전투표는 10월 11일(금)~12일(토), 본투표는 16일(수) 진행된다. ⓒ 연합뉴스

진영 결집은 자칭 진보 세력이 먼저 출발선을 끊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조희연 전 서울교육감의 대법원 유죄 판결이 확정된 다음 날인 8월30일 곧바로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 추진위원회(추진위)'를 구성했다. 이름에서부터 '민주'와 '진보'를 앞세운 해당 단체는 진보 진영 후보를 결집하는 동시에 경선을 통한 단일화에 나섰다.

"이재명과 함께" "이재명 책 기획"…'明心' 드러낸 후보들

추진위에 참여한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친밀도를 은연 중에 드러냈다. 정 교수는 15일 이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 홍보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여기에는 '역사와 진실을 위해 함께 해왔습니다'란 글귀가 적혀 있다. 해당 홍보물은 카카오톡 단체방 등을 통해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자치법상 교육감 선거 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받고 있음을 표방해선 안 된다. 정당 공천도 금지돼 있다. 이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정 교수의 해당 페이스북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정 교수는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장관급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을 역임했다.

추진위 단일화에 불참하고 독자 출마에 나선 방재석(필명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도 이재명 대표와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방 교수 측은 《인간 이재명》 책 집필을 기획했다는 이력을 포스터로 만들어 20일 카카오톡 단체방 등을 통해 배포했다. 포스터에는 '《인간 이재명》 기획단으로 기본사회와 기본교육의 꿈을 발견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대표를 집중 조명한 이 책은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2개월 전인 2021년 8월 출간됐다. 반응은 상당했다. 당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흐느끼며 읽었다"고 밝혔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독후감을 써서 올리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에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독서를 거부하며 책을 둘러싼 열풍을 '재명학(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범도》의 작가로 유명한 방 교수는 23일 '범민주단일화회의'라는 새로운 진보 진영 단일화 기구를 제안한 상태다.

20일 서울교육감 선거 예비후보 방재석 중앙대 교수의 홍보를 위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포스터. ⓒ 시사저널 입수

'교육 탄핵' 넘어 '정권·검찰 탄핵' 외친 곽노현

그 밖에 진보 후보들 사이에서 윤석열 정부와의 대립각은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아예 이번 선거를 정치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권혜진 추진위 상임대표는 19일 서울의소리 유튜브에 출연해 이번 선거의 '시대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윤석열 교육 정책의 탄핵과 함께 살펴봐야 할 정치적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추진위 후보인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은 2일 출마를 선언하며 △혁신교육 지속 △교육에 대한 시민의 참여 △교육현장 중시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이 와중에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 탄핵"을 외쳤다. 강 전 부위원장은 출마선언문을 통해 "아무리 교육청이 잘하려고 해도 정부와 교육부가 잘못된 정책을 가져간다면 모든 것이 허사"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와 강 전 부위원장은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과 함께 21~22일 진행된 추진위 경선에서 최종 3인에 들었다. 추진위는 이들 3명을 대상으로 24~25일 여론조사를 통해 최종 단일 후보를 추대할 계획이다. 한편 경선에서 탈락한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결과에 승복한다"면서도 "이번 선거의 본질로 규정한 윤석열 정권의 교육 정책 탄핵, 정치검찰 탄핵, 몸통 그 자체 탄핵이라는 3중 탄핵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육감 후보가 정권을 넘어 사정기관에도 칼을 겨눈 것이다.

보수 진영 후보로 나선 홍후조 고려대 교수 측에서 출마 선언 당시 만든 포스터 ⓒ 네이버 카페 캡처

단일화 진통 속에 짙어지는 '좌파우파론'

보수 진영에서는 노골적으로 '이념론'을 꺼내 들었다.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은 5일 출마를 선언하며 "지난 10년간 서울 교육이 좌파 세력들에 의해 황폐해졌다"며 "이념으로 오염된 학교를 깨끗이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측은 9일 출마 선언 때 '자유 우파 후보'라고 포스터에 명시했다. 홍 교수는 "학교가 학생을 친북 주사파로 길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보수 진영은 단일화에 잠정 실패하면서 후보 난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조 의원과 홍 교수는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과 함께 단일화 기구인 '서울교육감 중도우파 후보단일화 통합대책위원회(통대위)'에 참여했다. 통대위는 25일 오전 단일화 후보 선출을 위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발표되기도 전인 23일 홍 교수와 안 회장이 "여론조사가 조 의원에게 유리하게 설정됐다"며 무효를 주장했다. 진보와 보수 후보 모두 진영 논리를 기반으로 소속감 과시와 외집단 전략을 섞어 쓰고 있지만, 정작 내부 단일화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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