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40년 기술맨'이 기자회견 자처한 까닭
'고려아연 기술력=대한민국 기술안보' 강조
영풍 장형진 고문에는 '부끄럽지 않나' 직격탄
고려아연이 지난 7월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을 떠나 새로운 본사로 자리잡은 종로구 그랑서울빌딩. 영풍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공개매수를 선언한 이후 연일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은 24일 오전 11시 본사로 취재진을 불러 첫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본사 15층에 마련한 기자회견장은 50명 남짓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강당이었다. 사안의 중대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1층 출입구에서 신원을 확인한 취재진만 입장시키는 등 긴장감도 감돌았다.
기자회견 자리에 경영권 분쟁 중심에 서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경영권 분쟁 대응의 키맨이라 할수 있는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없었다. 대신 자신을 '기술자'라고 소개한 작업복 차림의 이제중 부회장(CTO, 최고기술책임자)이 연단 가운데 섰다. 김승현 기술연구소장, 설재욱 생산1본부장, 권기성 생산3본부장, 원종관 생산2본부장도 함께했다.
참석자의 면면은 곧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려아연이 강조하고자 한 내용을 대변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카메라공포증 이제중 부회장…주먹 불끈 쥐고 영풍·MBK 비판
고려아연 관계자는 기자회견 전 "이제중 부회장이 카메라 공포증이 있지만, 이번 기자회견은 본인이 자청해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미래를 둘러싼 중대 이슈가 불거진 상황에서 40년 이상 근속한 '기술맨' 이제중 부회장 본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카메라 공포증이 있다는 고려아연 직원의 설명과는 달리 이제중 부회장은 이날 회견장 연단에서 시종일관 주먹까지 불끈 쥐며 고려아연을 지켜달라고 국민 앞에 강하게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50년 동안 임직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 온 대한민국 자존심인 고려아연을 지키기 위해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M&A 부당함을 알리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고려아연은 결코 투기자본의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려아연 기술=대한민국 미래'…"MBK와 함께하지 않을 것"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이날 A4 5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면서 '기술'이란 단어를 13번이나 언급하고, '미래'란 단어도 4번 말했다.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기술과 열정으로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기업으로 우뚝 섰다고 했고, 비철금속은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국내의 주요 산업에 핵심 원자재를 공급하는 우리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기간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오늘의 고려아연은 수십 년간 밤낮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해온 엔지니어 연구원 현장근로자의 눈물어린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우리의 기술, 우리의 미래, 우리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돈, 돈, 돈 뿐"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의 미래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기초소재산업 미래를 위해 고려아연 현 경영진을 지지해달라는 점을 호소한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핵심 기술인력, 그리고 고려아연의 모든 임직원들은 현 경영진과 함께 할 것이며, 영풍·MBK파트너스와 절대로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힘줘 말했다.
"최윤범은 가족, 장형진은 머슴처럼 사람 대해"
이제중 부회장은 '영풍'(8번), '장형진'(4번), '투기'(4번) 등의 단어도 강하게 언급했다. 특히 장형진 영풍 고문에 대해선 "부끄럽지 않나"며 직격탄을 날렸다.
석포제련소(경북 봉화의 영풍 제련 사업장) 경영 실패로 환경오염과 중대재해를 일으켜 국민들께 빚을 지고 있으면서, 이제 와서 기업사냥꾼인 투기자본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1982년 온산제련소(울산의 고려아연 제련 사업장)로 입사해 제련소장, 대표이사를 지낸 이제중 부회장은 영풍 장형진 고문의 경영능력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경영능력 중에서도 사람관계가 중요한데 최윤범 회장은 사람을 가족처럼 대해준다"며 "반면 영풍의 장형진 고문은 사람을 머슴처럼 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의 기술력, 최윤범 회장의 경영능력을 거듭 강조하면서 고려아연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최윤범 회장은 보통 전문경영인이 아니다"라며 "이 상황을 차분히 잘 진행하고 있으며 경영권 분쟁 역시 분명히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오늘 기자회견도 우리나라와 주주 때문에 한 것"이라며 "기술이 국가 미래를 좌우하고 기술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아울러 기술유출은 없을 것이라는 MBK파트너스의 주장에 대해서도 "저는 믿지 않는다. MBK는 고려아연을 경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의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에 대응하는 전략 등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전략 노출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40년 경력의 기술맨으로 '고려아연의 기술=대한민국의 기술안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1시간 조금 넘는 기자회견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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