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등생 피습 사망에…일 외무상, 중국에 ‘반일 콘텐츠’ 단속 요구
지난 3월 중국 온라인에서는 최대 음료 기업 농푸산취안 음료를 변기에 버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급속히 퍼졌다. 농푸취시안이 친일·친미 기업이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벌어진 불매운동의 일환이었다.
의혹은 아시아 최대 갑부인 중산상 회장의 아들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분노의 불길을 지핀 것은 음모론이었다. 이 회사가 생산한 생수병의 빨간 뚜껑은 욱일기, 병에 그려진 산은 후지산, 녹차병의 절은 야스쿠니 신사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영상 등을 통해 확산됐다.
농푸산취안 불매운동은 중국 내에서도 억지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 온라인의 반일감정이 자국 기업마저 공격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교훈을 남기며 잠시의 소동으로 그치는 듯했다.
중국 온라인의 성공 보증수표인 반일 콘텐츠가 중·일 관계의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에서 거주하는 일본인 초등학생이 올해 들어 두 차례 흉기 공격을 당하면서 일본은 이런 콘텐츠를 증오를 부추기고 재중 일본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24일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가와카미 요코 외무상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을 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본인학교 등과 관련해 확산하는 근거 없는 악질적 반일 콘텐츠를 단속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가미카와 외무상은 지난 18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 일본인학교 초등학생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과 관련해 범행 동기를 포함한 사실관계를 규명해 일본 측에 명확하게 설명해 줄 것과 범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왕 부장은 중국 입장은 외교부 대변인이 지금까지 언급해 온 대로라면서, 이번 사건은 중국 측도 보고 싶지 않았던 우발적 개별 사안으로 법률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개별적 사안으로, 유사 사건은 어떤 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중·일 양국 교류·협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해 왔다.
중국에서 일본인 초등학생이 흉기 피습을 당한 것은 지난 6월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지난 6월 쑤저우에서 일본 초등생 흉기 피습 사건이 일어난 이후 콰이쇼우, 더우인(틱톡) 등 동영상 플랫폼들은 일본인 공격을 선동하는 노골적 게시물을 단속하고 있다. 계정이 정지된 스트리머 가운데는 ‘항일·방첩 활동가’를 자처하며 일본인 학교 정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중계하던 이도 있었다.
하지만 SNS에서는 선전시 초등생 피살 사건을 두고도 “일본인을 위한 학교가 중국에 왜 있느냐” “일본인 학교는 간첩 양성소”라는 주장을 볼 수 있다.
2023년 7월 개정 반간첩법이 시행되고 당국이 안보를 강조하면서 일각에서 반일행위를 방첩행위라고 표현하는 일도 더욱 눈에 띄고 있다. 중국 법원은 지난해 11월 간병인으로 일하다 간첩 혐의로 구속됐던 50대 일본인 남성에게 징역 12년형을 확정했다.
일본 관점에서는 당국이 이를 방치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일본은 2010년대 초반 혐한 시위가 벌어지고 조선학교가 공격의 대상이 되자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마련했다. 재일 한국인 대상 혐오발언은 이후에도 보고되지만 처벌 사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일본인을 향한 공격은 우발적 사건이지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사건 닷새째 광저우 초등생을 숨지게 한 용의자의 범행 동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증오범죄 논란을 불붙이며 당국 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이후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규제한 것과 관련해서도 대화가 오갔다.
가미카와 외무상은 오염수 추가 모니터링을 일찌감치 해서 수입 규제 철폐를 위한 진전을 확실히 이뤄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왕 부장은 “중국이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본이 장기적 국제 모니터링과 이해 당사국의 독립 샘플 채취·모니터링에 동의한 만큼 약속을 지켜야 하며,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양국은 중국 측 전문가들이 후쿠시마 원전 인근 바다를 모니터링하도록 허용하고, 검증 결과에 따라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점진적으로 재개하기로 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는 중국에서 온라인 반일 콘텐츠가 전성기를 맞은 계기이기도 하다.
오염수 방류 당시 일본 관공서에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고 끊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와 인기를 얻었다. 이는 일각에서 재미있는 놀이면서 바다를 더럽히는 일본에 맞서는 영웅적 행위로 인식됐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왕 부장이 이날 회담에서도 ‘핵폐수’란 용어를 사용했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https://www.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9191721001
https://www.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9201631001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8011525001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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