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방 미수’ BBC와 ‘불방’ KBS…경영진의 태도는 달랐다

박강수 기자 2024. 9. 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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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의 미디어 잔혹사 <6> 북아일랜드 분쟁과 세월호 참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 단체가 지난 2월22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불방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모르긴 몰라도, 영국의 공영방송 비비시(BBC)에 10월16일은 유서 깊은 날입니다.

1985년 7월, 방영을 앞둔 비비시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내용이 유출되면서 정권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집권 7년 차였죠. 대처 내각은 비비시 경영위원회(이사회)를 압박했고, 경영위원회는 해당 다큐멘터리를 사전 시청한 뒤 ‘방영 불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비비시 직원들은 대대적인 저항으로 응답했고, 경영진도 직을 걸고 경영위원회에 맞섰습니다. 결국 일부 타협이 이뤄지면서 다큐멘터리는 방영됐습니다. 10월16일이었죠.

즉, 이날은 비비시가 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사수한 기념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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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16일에 방영된 비비시 다큐멘터리 ‘리얼 라이브: 연방의 가장자리에서’ 화면.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1985년 BBC의 ‘리얼 라이브’

문제의 방송은 ‘리얼 라이브’(Real Live, 1984∼1985)라는 다큐 시리즈의 세번째 시즌 여섯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회차 제목은 ‘연방의 가장자리에서’(At the Edge of the Union).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룬 다큐였는데, 마틴 맥기네스라는 인물의 인터뷰가 화근이 됐습니다. 북아일랜드의 독립 무장조직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IRA) 출신 인사였기 때문이죠.

당시 영국은 북아일랜드 분쟁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북아일랜드 내부에서 아일랜드로의 독립을 외치는 공화파, 영국계 북아일랜드 주민이 주축을 이뤄 연방의 편에 선 얼스터 왕당파, 그리고 영국 정부 사이 교전으로 늘 유혈이 낭자하였죠.

잉글랜드 본토에서도 테러가 빈발했고, 민간인 학살과 정치범 고문이 자행됐습니다. 특히 영국군이 북아일랜드 시위대를 학살한 ‘피의 일요일’ 사건(1972년)을 기점으로 북아일랜드 공화파 가운데 무장 투쟁을 추구하는 과격파가 크게 득세하였는데요, 이들이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입니다. 맥기네스는 이 단체 출신으로 1980년대부터는 관련 정당인 신페인당에 몸담았습니다. 영국 입장에서 보면 ‘반정부 세력’의 지도자였죠.

1994년 12월8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마틴 맥기네스 당시 신페인당 부대표. 맥기네스는 신페인당의 협상을 지휘하며 ‘북아일랜드 분쟁’을 종식한 ‘벨파스트 협정’(1998) 체결에 일조했다. AP 연합뉴스

비비시 다큐는 혼란의 시대에 한 극단 진영의 당사자로부터 직접 목소리를 청취한 혁신적인 시도였으나, 대처의 격노를 피할 길은 없었습니다. 감히 ‘테러리스트에게 공영방송의 전파를 허용’했으니까요. 이는 비비시를 향한 전례 없는 외압으로 이어졌습니다. 내무부 장관이 직접 경영위원회에 방송 중단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친여 인사로 채워진 경영위원회는 정권의 의중에 맞게 실력을 행사했습니다. 7월31일 ‘방송 불가’ 결정을 내렸죠.

이를 명백한 ‘정치적 검열’로 받아들인 비비시는 일사불란하게 들고 일어났습니다. 직원들은 24시간 파업을 벌였고, 부사장은 언론에 대고 “경영위원회는 비비시에 타이태닉을 침몰시킨 빙산 같은 존재”라는 극언(?)을 쏟아냈죠. 사실 이 다큐는 방송사 내부 지침을 어기고 사장도 모르게 추진됐던 방송이었음에도 경영진은 제작진 편에 섰습니다.

다큐는 전반부에 아일랜드 무장세력에 희생된 영국인 추모 영상을 넣는 식으로 수정되어 송출됐습니다. 다만 방송을 관철해낸 대가는 컸습니다. 이 회차를 끝으로 ‘리얼 라이브’는 종영됐고, 북아일랜드 관련 비비시 내부 심의 기준은 강화됐습니다. 이때 정부와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넌 알라스데어 밀른 당시 사장은 비비시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됐고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AP 연합뉴스

2024년 KBS의 ‘다큐 인사이트’

올해 한국의 공영방송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방송(KBS)의 간판 다큐멘터리 시리즈 ‘다큐 인사이트’(2019∼) 제작진은 지난 2월 ‘세월호 참사 10주기’(2024년 4월16일)를 앞두고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 윗선으로부터 “4월 방영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제원 신임 제작1본부장의 지시였습니다. 제작진 주장에 따르면 이 본부장이 ‘4월은 안 된다’고 한 이유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총선은 4월10일이었고, 방영 예정일은 4월18일이었기 때문에 ‘무슨 수로 방영도 되지 않은 다큐멘터리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습니다. 제작진은 물론 한국방송 구성원과 언론·시민단체, 한국방송 시청자위원회까지 나서 수차례 책임자 해명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한국방송은 대동소이한 골자의 공식 답변을 반복했습니다.

요컨대, 이 다큐는 본래 대형 참사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다룬 기획물이었고, 이제원 본부장은 기획 취지에 맞게 세월호뿐 아니라 대구 지하철 참사, 천안함 피격 사건도 함께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 이에 맞게 방송을 다시 제작하라고 지시하고 기한을 6월 이후로 늦췄다는 설명입니다. 이것은 간섭이나 억압이 아니라 책임자와 실무자 사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일 뿐이라는 뉘앙스지요.

촬영 40%, 섭외까지 80%가 진행됐다던 해당 다큐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영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대신 한국방송 해명대로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지난달 6일 방송됐습니다. 참사 생존자들이 스스로 고통을 증언하고,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는 내용의 다큐입니다.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그와 별개로 이 기획 자체가 ‘불방 논란’의 산물이라는 점은 석연치 않은 일입니다.

지난달 6일 한국방송 1티브이(TV)에서 방영된 ‘다큐 인사이트: 생존자들 보이지 않는 상처 PTSD’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세월호 20주기 때는 다르길”

비비시와 케이비에스 각각의 ‘불방 사건’을 동급으로 놓긴 어렵겠습니다. 둘 다 어떤 정파적 판단이 방송 제작자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결과적으로 비비시 사건은 ‘불방 미수’에 그쳤습니다. 방송사 바깥에서 작용한 외압이 분명했으며 사장이 제작자들의 방패가 되어준 뒤 교체당했습니다. 한국방송은 반대로 지난해 사장이 먼저 바뀌고 난 뒤부터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됐고, 외압이라고 볼 단서는 없지만 경영진이 제작진을 내부에서 진압하여 ‘불방’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다르죠.

1985년 빌 코튼 당시 비비시 텔레비전 책임자는 경영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다큐멘터리 방영 중단 결정이 ‘비비시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국가의 공적 자금을 받아 운영되는 방송사가 국가 권력과 거리두기에 실패할 때, 다시 말해 독립성이 훼손될 때 공영방송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비비시는 ‘편집의 독립성: 비비시와 정부’라는 제목의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방송의 독립성을 향한 투쟁의 역사를 정리해 두었습니다.

‘리얼 라이브’ 사건을 포함해 14개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요. 이 중에는 비비시의 위상을 실추시킨 ‘흑역사’도 있지만 하나하나가 비비시 독립을 기념하는 이정표인 셈입니다.

박민 한국방송 사장. 연합뉴스

한국방송의 구성원들이 꾸는 꿈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다큐’ 불방 사태 당시, 한국방송 입사 3년 차 시사교양 피디들이 낸 성명 일부를 옮깁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공영방송의 책무입니다. 함께 그날을 기억하고 참사를 겪지 않은 세대에게도 이를 전달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고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10년 뒤 저희가 ‘세월호 20주기’ 다큐 연출이 되었을 때는 부디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임원이 바뀔 때마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회사가 아닌, 마땅히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회사를 다니고 싶습니다.”

미디어 잔혹사는?

유튜브 댓글부터 저녁 뉴스 날씨예보까지 미디어의 영토는 드넓습니다. 늘 논쟁이 끊이질 않는 영역이지요. 이곳에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선이 들어섰습니다. 언뜻 정치적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연루된, 자유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 투쟁담을 중계해드립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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