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유골함 잠시 보관"…'하늘 정거장'을 아시나요 [현장+]

성진우 2024. 9. 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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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유골함 임시 안치소 '하늘 정거장'
화장 수요 넘쳐 '당일 안치' 어려울 때 주로 이용
서울승화원서 도입 반년…이용 건수 100건 달해
"기피시설 '화장터' 늘릴 방안도 고민해야"
23일 서울시립승화원 '하늘 정거장' / 사진=성진우 기자


"올해로 14년 차 장례지도사로 활동 중인데 그동안 유족들이 어쩔 수 없이 유골함을 그냥 집이나 장례식장 안치실에 보관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았어요." 

23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만난 30대 장례지도사 김모 씨는 "예를 갖춰 유골함을 잠시 보관해주는 '하늘 정거장' 운영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좋은 제도 같은데 홍보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전국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립승화원이 공공 화장시설 최초로 도입한 유골함 임시 안치소인 '하늘 정거장'이 가족을 화장한 유족과 장례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하늘 정거장'이 넘치는 화장 수요에 제시간에 납골당에 안치할 수 없는 유골함을 임시 보관해주며 유족들의 부담을 덜어줬기 때문이다. 

'화장터 부족' 문제 겪는 유족들…'하늘 정거장' 덕에 추모에 집중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3일 차 화장률'(3일장)은 53.1%에 그쳤다. 사망자 중 절반가량은 사망 4일 이후에나 화장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고령화 등으로 사망자는 늘어나는데 기피 시설로 인식되는 화장터가 적절하게 늘어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다. 

화장 시간이 늦은 오후로 늘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러면 보통 오후 5시 전후로 문을 닫는 납골당에 안치가 불가능하고, 장지 이동도 어려워져 유족들은 유골함을 차나 장례식장에 보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서울시립승화원이 지난 3월 25일부터 운영 중인 하늘 정거장은 이 같은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유골함 임시 안치단이다. 화장이 오후 4시 이후 끝날 경우 예를 갖춰 유골함을 임시 보관한 뒤, 이튿날 오후 2시까지 보관해준다.

이날 서울시립승화원 1층 분골실 한쪽에 마련된 '하늘 정거장'은 화사한 조명으로 밝혀져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직원의 도움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 58위의 유골함을 안치할 수 있는 보관소가 보였다. '하늘로 가기 전 잠시 들리는 곳'이란 뜻으로 지은 시설 이름답게 고인을 최대한 예우하기 위해 곳곳에 꽃도 마련돼 있다. 

하늘 정거장에 유골함을 안치하는 모습 / 사진=서울시립승화원 제공


유가족들은 화장 접수 시 이용 의사를 밝히고 동의서를 접수하면 하늘 정거장을 이용할 수 있다. 내부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보관함을 열어 유골함을 안치한 뒤, 따로 비밀번호도 설정할 수 있다.

이날도 오후 5시 기준 1건의 하늘 정거장 신청이 접수됐다. 한 유가족은 고인의 유골함을 안치한 뒤,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이번에 이 시설을 알게 됐다. 아이가 편안하게 잠시 머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부터 안치돼있던 두 위의 유골함도 오전 중 유족들에게 안전하게 돌아갔다. 김 장례지도사는 "이달 초에도 고인 한 분을 잠시 안치했다"며 "직계 유족분들 나이가 다소 어려 장례 절차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는데, 하늘 정거장이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승화원에 따르면, 도입 후부터 이날까지 총 96위의 유골함이 이곳에 임시 보관됐다. 지난달엔 32위의 유골을 모셨다. 유골함을 찾아가지 않은 경우엔 일정 기간 보관한 뒤 무연고 사상자로 처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같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서울시립승화원 '하늘 정거장' / 사진=성진우 기자


그간 화장 시간이 밀려 유골함을 당일 안치하지 못하고 집 등 다른 곳에 보관하는 일이 빈번했던 만큼, 시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서울시는 최근 시민 생활편의 증진 및 불편 해소에 기여한 적극 행정 최우수 우수사례로 하늘 정거장을 뽑기도 했다.

한 50대 유족 서모 씨는 "작년 7월 충북 충주에서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납골당 안치 시간을 맞추려고 온 가족이 전전긍긍한 기억이 있다"며 "하늘 정거장 같은 제도가 있으면 온전히 추모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화장이 늦게 끝나 유골함을 당일 안치하기 힘들면 장례식장에서 잠시 이를 보관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6만~10만원의 별도 비용이 들어가고, 정식 보관소가 아니란 점에서 유족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

매주 서울시립승화원에 온다는 장례지도사 유모(52) 씨는 "서울 국립의료원 등 서울 시내 장례식장에 잠시 유골함을 맡아주기도 하지만 정식 보관소가 아닌 안치실에 보관한다"며 "하늘 정거장처럼 임시 안치를 전담하는 시설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화장인데 장지가 먼 경우에도 유족들에게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하늘 정거장 확대 함께 '화장터 부족' 사태 해결도 고민해야"

일각에선 하늘 정거장과 같은 유골함 보관소는 결국 임시방편 일 수밖에 없단 목소리도 나온다. 하늘 정거장의 등장 배경이기도 한 전국적인 화장터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보건복지부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지역 주요 화장장 중 한 곳인 서울추모공원은 25일 오전까지 전체 화장 일정이 꽉 찬 상태다. 서울시립승화원도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화장을 예약할 수 있었다.

23일 서울시립승화원 1층 분골실 앞 유족들 / 사진=성진우 기자


서울시립승화원 관계자는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많은 분이 돌아가시고 있는데 기피 시설인 화장터는 전국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하늘 정거장 정책 한 달 전 화장 마감 시간을 5시 반에서 7시 반으로 연장한 것도 이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늘 정거장을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화장터가 화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임시 보관소가 좋은 대안이란 점에서 당연히 확대되길 원하지만, 근본적으로 화장터를 늘릴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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