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6·25용사 추모 공간’… 번영의 기틀 만든 ‘희생’ 기억 의미[10문10답]

김성훈 기자 2024. 9. 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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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서울시 ‘감사의 정원’ 27일 공모
‘100m 게양대’ 파장 지속되자
市 “어떤 형태라도 제한 없다”
‘22개국의 헌신’ 기리는 장소
미래세대에게‘의미’전달해야
일각 애국주의 조장 비판 일어
“맹목적 충성 강요 과거 떠올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6·25 참전 22개국 용사 추모공간(가칭 ‘감사의 정원’)과 상징조형물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7일 통합설계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은 추모 불꽃과 미디어 폴로 이뤄진 감사의 정원 예시 이미지. 서울시청 제공

서울시가 오는 27일 광화문광장에 조성할 6·25 참전국 용사 추모공간(가칭 ‘감사의 정원’) 및 상징조형물에 대한 통합설계공모를 시작할 예정이다. 광화문광장 추모공간 추진은 지난 6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초대형 태극기’ 설치 구상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곧바로 야당 등을 중심으로 국가주의, 애국주의 등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오 시장은 ‘국가를 상징할 수 있는 조형물이라면 태극기가 아니어도 좋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어 지난 8월 20일엔 국가주의 논란을 피할 수 있게 6·25 참전병을 기리는 공간으로 개념을 정립했다. 서울시는 해당 공간의 명칭도 가칭 ‘감사의 정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초대형 태극기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에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는 모양새다. 광화문광장 추모공간의 의미와 논쟁 지점 등을 문답으로 자세히 풀어봤다.

미국 워싱턴DC에 세워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1. ‘감사의 정원’은 무엇인가

오 시장의 광화문 추모공간 추진은 처음에 ‘100m 높이 국기게양대’와 초대형 태극기 설치 구상으로 시작했다. 오 시장은 호국 영웅들을 기리는 취지에서 발표 시점도 6월 25일 ‘참전용사 간담회’ 행사로 잡았다. 그러나 초점이 100m 태극기에 맞춰지면서 논란만 빚어졌다. 이후 오 시장은 순국열사뿐 아니라 6·25 당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머나먼 타국까지 달려왔던 22개국 청년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는 공간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다시 설명했다. 광화문광장 내에 가칭 ‘감사의 정원’이라는 추모공간을 만들고, 상징조형물도 건립하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한민국 번영의 기틀이 된 참전용사의 희생을 6·25 당일만이 아니라 365일 내내 기억하는 공간과 조형물을 조성하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국위선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 왜 광화문광장에 조성하려 하는가

서울시는 감사의 정원과 상징조형물을 광화문광장 일대에 만들려는 이유에 대해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의 고유한 정체성과 상징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표적 장소”라며 “자유, 호국으로 대변되는 시민의식의 발현지이자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근현대사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광화문광장에 8·15 광복, 6·25 전쟁 등 근현대사의 의미와 순국선열을 기리는 기념물은 딱히 없으므로 이곳에 상징적 공간을 조성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필수적으로 들르는 곳인 만큼 이곳에 6·25 참전국 용사들을 추모하는 공간과 조형물을 조성한다면 세계와의 소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광화문광장 일대는 역대 정부나 정치인들도 여러 차례 개조했을 정도로 상징성이 큰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인 2009년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건립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조차 광화문광장 지하 공간 개발, 측면광장 조성 등을 추진한 바 있다.

3. 조형물 예정지·시설규모·디자인은

서울시에 따르면 상징조형물은 광화문광장 내에서 호국보훈의 의미를 가장 잘 표출하고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최적의 위치에 설치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지난 8월 기자설명회에서 세종로공원 옆에 조성된 조형물 조감도를 공개하면서 이곳에 상징조형물이 설치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설치 장소는 변경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애초 공개됐던 조감도는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번영의 기틀이 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장소로서의 가치, 미래 세대에게 그 의미를 전하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원칙만 지켜진다면 장소에는 제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통합설계공모에도 이런 취지가 반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공모를 받는다는 입장이다. 시설규모는 세종대왕상 등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서울시 의견이다. 서울시는 조형물이 영구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첨단기술을 접목해 콘텐츠를 호환할 수 있는 구조인지 등도 고려할 방침이다.

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추모하는 영국 런던 ‘세노타프’.

4. 오세훈 시장은 여전히 대형 태극기 설치를 고집하나

오 시장은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일대 추모공간 조성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받겠다”며 “상징물 중에는 태극기가 들어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태극기는 물론 국민 공감을 반영한 조형물이라면 무엇이라도 설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상징물 형태를 제한하지 않고 국제 설계 공모를 거친 뒤, 전문가 자문과 시민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실제 태극기나 태극기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7월 15일부터 한 달간 진행했던 시민 의견수렴에서도 추모공간에 적합한 상징물로 태극기를 꼽은 시민 의견이 총 522건의 의견 중 215건(41%)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가변형 국기게양대, 미디어 조형물, 예술·상징적 조형물 등 다양한 형태가 제안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자유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5.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상징물을 추가할 필요가 있나

서울시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은 애민(愛民)정신의 상징이고, 이순신 장군 동상은 국난극복의 상징이다. 둘 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대표하는 조형물이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과 인류 평화를 표현하는 상징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번에 조성하려는 감사의 정원과 상징조형물은 자유민주주의를 형상화하고 6·25 참전국 영웅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또 새로운 조형물이 국제사회와의 지속적인 연대를 상징화해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담는다는 점도 기존 세종대왕·이순신 장군 동상과의 차이점으로 들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글로벌 정체성과 역할을 부각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6. 애국 강요 국가주의적 발상 아닌가

일각에서는 광화문광장에 상징조형물로 국기게양대를 설치하는 계획이 국가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구조물을 보는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도록 강요받았던 군부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될 것이란 주장까지 나왔다. 이념 논쟁이 일자 오 시장은 시의회 시정 질의에서 이에 관련해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영토 중 가장 많은 대중이 방문하는 곳에 소통의 공간과 상징조형물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주의, 국수주의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조형물 건립과 관련해 이미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존재하게 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지 ‘애국심 강요’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게 오 시장과 서울시의 입장이다.

독일 베를린의 세계대전 희생자 추모관 ‘노이에 바헤’.

7. 외국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나

서울시에 따르면 해외에도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공간과 상징조형물이 다수 건립돼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워싱턴DC에는 베트남 참전 군인을 추모하는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가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2차 세계대전 이오지마 전투를 기념해 성조기를 세우는 해병대원의 모습을 재현한 ‘이오지마 기념비’가 있다. 영국 런던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영국군을 추모하기 위한 ‘세노타프(Cenotaph)’가 있으며, 독일 베를린에는 세계대전과 군국주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관인 ‘노이에 바헤(Neue Wache)’가 건립돼 있다. 현재 많은 사람이 이 기념물들을 방문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 기념물들은 희생된 이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하고 후세에 전할 중요한 역사적 자산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서울시는 전했다.

8.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고 있나

다양한 찬반 의견이 제시되자 서울시는 거주지에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의 의견수렴을 진행했고, 약 한 달 사이에 총 522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그러나 수렴한 의견이 너무 적다거나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한 접수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등 반대론자들의 비판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별도 여론조사까지 실시했다. 이번에는 감사의 정원이 조성됐을 때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이용하게 될 서울시민의 의견을 집중적으로 청취하기 위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감사의 정원 조성에 동의한다는 답변은 49.5%,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42.6%였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지속해서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총괄건축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 전문가 의견을 청취 중이며, 시민들로 구성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자문 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9. 보수 지지 얻기 위한 행보는 아닌가

일각에서는 광화문광장 추모공간 조성이 태극기로 대표되는 애국심의 상징물을 기반으로 보수층 지지를 확보하려는 오 시장의 정치적 행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오 시장은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꼽히지만, 서울시 정책 수행에 있어서도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는 등 극우보다는 온건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6·25 참전용사 추모를 들고 나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숭고한 희생에 대한 감사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좌우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공통된 가치”라며 “그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는 일은 정치적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할 과제”라고 일축했다.

10. 공사 일정과 향후 계획은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조성될 감사의 정원과 상징조형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그 의미가 충분히 표현될 수 있도록 27일부터 통합설계공모를 추진한다. 올해 말까지 작품을 접수해 내년 1월 당선작 선정과 계약 체결 등을 할 예정이다. 설계 공모 확정 시 디자인과 용도 등도 최종 확정된다. 공모 당선작의 형태, 규모, 위치 등에 따라 공사 기간은 다소 유동적이지만, 일단은 내년 5월 공사를 시작해 9월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서울시는 이 사업과 관련해 정부와도 밀접하게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내 감사의 정원 조성은 국가건축위원회 ‘국가상징공간사업’과는 별개”라며 “절차적 측면에서 협의나 조율 대상이 아니지만, 두 사업이 큰 틀에서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는 만큼 상호보완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훈·이정민·이승주·김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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