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억제제 '묻지마 처방' 심각…1명이 1년간 6037개 처방받기도
심장이상 등 부작용 치명적…"제재 규정 없어 대책 시급"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마약류로 지정돼 관리 중인 식욕억제제의 '묻지마 처방'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식욕억제제는 과다복용 시 불면증이나 환청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심장이상, 정신분열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112만6000여 명에게 약 2억2500만 개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3086명의 환자에게 61만 6600여 개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환자 수가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다. 올 들어 6월까지 처방된 식욕억제제는 약 1억9600만 개로 처방 환자는 83만5000여 명에 이르렀다.
하루 평균으로 나누어보면 처방량은 60만2000여 개로 지난해보다 약 2% 줄었지만 하루 평균 처방 환자 수는 4589명으로 48%(1503명)나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식욕억제제 처방을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2020년 8월부터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의료기관에 권고하고 있지만 처방권은 의사의 고유 권한으로 가이드라인을 어긴다 해도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4주 이내의 단기처방이 기본이며, 1일 권장 투여량은 1~3정이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추가 처방이 가능하지만 식약처는 부작용 위험을 고려해 총 처방 기간이 3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식욕억제제 처방량 상위 30명 환자'를 살펴보면 환자 A씨는 지난해부터 1년간 1개 의료기관에서 24번에 걸쳐 식욕억제제 6037개를 처방받기도 했다. 하루에 16.5개를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또 다른 환자 B씨는 같은 기간 8개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54번에 걸쳐 식욕억제제 5346개를 처방받았다.
올해는 단 한 번의 진료로 평균 635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사례도 있었다.
사용이 금지돼 있는 청소년에게도 202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5년간 378만 2000개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됐다. 처방받은 청소년 수만 4만860명에 이른다.
문제는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식욕억제제로 인한 부작용 보고 건수는 1383건으로 2020년 190건에서 2021년 316건, 2022년 319건, 2023년 342건, 2024년 6월 21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식욕억제제 처방은 의원급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전체 병원 종별 처방량을 살펴보면 의원급이 전체 처방량의 97%를 차지했다.
처방량이 가장 많은 의사 30명은 모두 의원급에서 근무했고, 이들이 지난 1년간 처방한 식욕억제제는 약 6700만 개, 처방 환자는 27만 4000여 명으로 전체 처방량의 30.5%, 전체 환자 수의 25.2%를 차지했다.
작년 한 해 가장 많이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의료기관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소재한 의원으로 2만 7549명의 환자에게 793만 2444개의 마약류 식욕억제제가 처방됐다. 해당 의료기관은 소위 '다이어트 성지'로 알려진 가정의학과로 추정된다.
환자 1명에게 식욕억제제를 가장 많이 처방한 의사는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치과의원 소속으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치과의사는 지난해 기준 환자 1명에게 1920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했다. 비만치료와 아무런 상관없는 치과에서도 식욕억제제를 처방하고 있는 것이다.
김윤 의원은 "식약처가 올해 6월부터 의사가 환자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마약류 투약내역 확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펜타닐에 대한 투약만 확인할 수 있어 마약류 식욕억제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환자의 과도한 의료 쇼핑도 문제지만 과도하게 많은 양을 처방하는 병원에 대한 식약처의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8년부터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구축돼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문제는 심각하다"며 "마약류 식욕억제제뿐만 아니라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방지 등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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