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공급대책은 맞고 대출규제는 틀렸다”

정혜연 기자 2024. 9.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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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시계제로’ 부동산시장]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 서울 인접 그린벨트 해제 발표, 골든타임 지켜
● 문제는 공급… 속도만 낸다면 정책 효과 나와
● 정비사업 진퇴양난, 이익 환수 재검토할 시점
● 균형발전 집착 말아야… 서울 경쟁력 키울 때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은 맞게 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대출 규제에 대해서는 “자칫하면 주택공급의 동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지호영 기자]
역대 정부는 부동산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집값 급등기에는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 및 투기 억제(노태우 정부), 종합부동산세·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및 혁신도시 개발(노무현 정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임대차 3법 도입 및 대출 규제 강화(문재인 정부) 등 각종 억제책과 공급 계획으로 집값을 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반대로 집값 하락기에는 그린벨트 해제·보금자리주택 사업 시행(이명박 정부), 대출 규제 완화·기업형임대주택 사업 시행(박근혜 정부) 등으로 집값 부양에 힘썼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2022년 하반기부터 2년 동안 전국적으로 집값 과열 분위기는 한풀 꺾이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올해 6~7월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거래 심리가 되살아났고, 실거래가가 전고점을 돌파한 단지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고, 8월 8일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대책의 주요 내용은 △정비사업 속도 제고 및 부담 경감으로 도심 내 아파트 공급 획기적 확대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수도권 공공택지 신속 공급 확신 부여 △서울 및 수도권 신규 택지 후보 8만 호 발표 △주택공급 여건 개선 등으로 모두 '공급'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공급도 대책 나름이다. 서울 강남에 인접한 분당(1기), 판교·위례·광교·동탄(2기) 신도시는 서울 및 수도권 주요 지역의 집값을 잡는 데 제 기능을 했지만, 나머지 신도시는 장기적으로 크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인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은 서울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대책 발표 직후 오히려 서울로 쏠림 현상이 심화해 집값이 오르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공급 대책, 중요한 포인트 잘 짚어"

그만큼 정부의 공급 대책은 주택 매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8월 8일 부동산대책 발표와 맞물려 9월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DSR 적용 등 대출 규제 영향으로 9월 초,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호가는 보합세를 보였다. 급한 불은 끈 것으로 보이지만 연말 미국 금리인하 기대감과 '똘똘한 한 채'에 대한 꾸준한 선호 심리가 언제 또다시 집값 상승세에 불을 붙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공급 측면에서 늦기는 했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중요한 포인트를 잘 짚어냈다고 본다"고 평가하며 "저성장 시대, 선택을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 마지막 시점인 만큼 뚝심 있게 정책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정부의 8·8 부동산 대책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서울 및 수도권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미래 부동산정책은 어떤 형태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정부가 8월 서울과 경기도 접경지역에 그린벨트를 풀어 8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등 공급 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여 시간이 지났다. 집값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보는가.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적절한 때에 잘 발표했다고 본다. 더 늦었다면 서울 대도시권에서 공간구조가 왜곡될 수도 있었다. 20여 년간 수도권에 '개구리 뜀뛰기식' 신도시 개발이 이뤄져 왔다. 빈 공간이던 그린벨트 구역에 주택을 채운다는 것은 장거리 통근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덜어주는 도시공학적 구조를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강남 인접 지역에 상당량의 주택공급을 하겠다는 대책은 제대로 이행하면 수도권 집값을 안정화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속도다. 이명박 정권 당시 주택공급 속도를 참고할 만하다. 2008년 말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2009년 9월에 사전청약이 시작됐다. 워낙 속도를 냈던 대통령이라 그해 말 본청약을, 2012년에는 입주를 했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였다. 당시 민간 건설사에서 반값에 가까운 공공분양을 했으니, 사람들이 높은 분양가의 민간 아파트청약을 기다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가격 추세를 보면 서울 아파트는 2009년 사전청약 시기, 본청약 시기에 우상향 곡선이 꺾였다."

2009년에는 건설 원가가 싸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자잿값이 너무 올랐다.

"그래서 그린벨트 땅을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비사업은 내재된 토지 비용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현재 고금리에 건설 원가까지 오른 상태라 건설사가 손해 보지 않으려면 분양가를 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땅은 건설사가 토지에 드는 비용을 낮춰 주택공급을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공공개발 환수 이익까지 낮춰준다면 건설사 부담은 더 줄어든다. 건설 원가가 높아졌다고 해도 건설사가 수익성을 맞출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재건축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도 나왔다. 기본계획·관리처분 등 별도 처리하던 과정을 일괄 처리하고, 재건축 동의 요건을 75%에서 5%포인트 낮추는 등이다. 이런 조치가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고 공급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까.

"효과가 있다. 지금은 부동산시장 여건이 변하고 있다. 과거 경제성장기에는 재건축·재개발이 조합과 건설사에 큰 이익을 줬기 때문에 정부가 기부채납, 공공임대 등 개발이익 환수 규제를 치밀하게 고강도로 설계해 놨다. 그러나 지금은 건설 원가 상승, 고금리 등의 이유로 옛날처럼 재건축을 통해 조합원이 큰 이익을 보기 어렵다. 건설사가 정비사업을 과거와 같이 추진했다가는 손해가 예상되니 속도가 나질 않는 것이다. 앞으로는 저성장 시대다. 성장기에 만들어놨던 고강도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

9월부터 스트레스 DSR이 적용됐고, 시중은행들이 무주택자에게만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는 등 은행권이 대출을 옥죄고 있다. 부동산시장 과열을 장기적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대출 금지를 강하게 하면 당장 집값 오름세를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 부동산시장을 심각한 급등기로 보는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가격 회복기 정도라고 본다. 정부가 섣부른 판단으로 고강도 대출 규제를 해버리면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지금은 공급을 늘려야 하는 시기다. 집값 상승은 사람들이 원하는 입지에 '똘똘한 한 채'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했는데, 해결하려면 '가격 상승'이라는 압력이 있어야 한다. 가격이 올라야 수익구조가 만들어지고, 조합원 갈등도 해결되고, 건설사도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억지로 막아버리면 잠깐 꺾이더라도 다시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지호영 기자]

목적성보다 중요한 건 '부작용 사전 인지'

부동산정책 실패는 국민 지지를 잃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진 이유 가운데 하나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벼락거지' '영끌족' 같은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당시 집값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졌다.

그렇다고 역대 정부 가운데 부동산정책을 바람직하게 펼친 사례를 찾기도 어렵다. 부동산정책은 항상 집값이 폭등하거나 폭락한 뒤 후속 대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사후약방문 성격이 강했다. 반복되는 부동산정책 실패의 근원적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장기적으로 어떤 목적과 방향성을 갖고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가.

"역대 정부의 부동산정책 목적은 다 좋았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빌려주거나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목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책의 정당성'이라는 것은 시장 실패의 대응 성격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부작용을 만들지 않아야 인정받는다. 그런데 지난 정부의 경우 다주택자 중과세, 전월세 상한제 등 부작용이 너무 컸다. 강남 대기 수요가 노·도·강까지 옮겨가면서 서울 집값이 전부 올라버렸다. 전월세는 어떤가. 4년간 못 올린다고 하니 임대인들이 미리 올려버렸다. 월세도 종부세 부담이 늘어나니 임차인에게 전가해 버렸다. 가장 큰 비극은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발생했다. 다주택자들은 과거 '임대주택 공급자' 역할을 했는데 중과세로 투자 기능을 보장받지 못하자 다주택의 매력이 떨어졌다. 비아파트의 전세가는 오르는데 매매가가 오르지 않으니 전세사기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부작용은 정부가 사전에 인지했어야 한다. 목적이 좋다고 결과까지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매번 들어서는 정부마다 신규 주택 공급의 중요성을 간과해 뒤늦게 공급 대책을 마련하는 듯하다. 정부가 주택공급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한다고 보는가.

"정부가 주택공급을 주도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택지를 LH에서 독점적으로 개발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반면 일본의 주택공급 주체는 민간으로, 대체로 철도회사에서 뉴타운을 개발한다. 철도 개발로 해당 지역의 집값이 오르면 인근에 공급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집값이 오르면 정부는 규제하기 바쁘고, 시장 반응이 꺾이면 민간 건설사는 막상 공급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 사이클이 반복되다 보면 공급 부족이 누적된다. 시장가격에 반응해 민간이 공급에 나서는 것이 최적의 시나리오이고, 정부와 국민이 이런 구도를 인정해야 한다. 지금도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정비사업이 진행돼야 하는데 또 막혀버리면 공급이 또 제때 안 될까 봐 걱정이다."

지방은 5대 광역시 내에서도 구도심보다 신도시, 신축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까.

"균형발전과 관련해 국가정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지향점이 있어도 추진하다 보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아 당초 목표에서 벗어나기 쉽다. 과거 성장기에 핵심 권역 서너 곳에 혁신도시가 추진됐다. 막상 뚜껑을 열어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 나눠주다 보니 결국 1/n이 됐다. 나주 혁신도시도 처음에는 크게 하려고 했지만 나눠 먹기식으로 진행돼 지금 가보면 텅 빈 상가가 적지 않다. 누군가는 아프겠지만 될 만한 곳을 선택해 집중하는 형식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는 저성장 시대에 파이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과거 5개 선택할 걸 앞으로 3개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균형발전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개발이라고 본다."

향후 미국의 금리인하가 예상되는데, 정부가 지금 대출을 옥죈다고 해도 내년 집값 상승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부동산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금리는 분명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19 시기 초저금리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 사실 부동산은 금리에 대한 영향이 큰데, 2020년 이후 전국적 집값 급등의 근본 원인은 초저금리 때문이었다. 금리인하는 캐시플로(cashflow)라는 현금 흐름과 자산가치의 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일례로 월 100만 원씩 임대수익을 내던 아파트가 있다고 치자. 금리가 반으로 떨어지면 집값이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 잘못돼서 오르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폭등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19 시기 집값 상승은 OECD 주요국 도시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집값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에 막으려고 정책을 내놨다간 시장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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