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에게 고엽제 후유증 유전…국가가 역학조사하고 인정 기준 세워야”

신다은 기자 2024. 9. 2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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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국내 최초 고엽제 환자 임상 사례 알린 임종한 인하대 교수 인터뷰 \"3세 피해 호소 사례 점점 늘어…베트남, 미국처럼 국가가 방치해선 안 돼\"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환 전문의가 2024년 9월10일 고엽제 피해자를 진료하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고엽제 2세 지원은 1998년 시작됐지만, 당사자들이 실제로 고엽제와의 연관성을 자각한 건 26년이 훌쩍 지나서다(손자의 척추기형, 연결고리는 할아버지의 고엽제). 최근 중년에 접어들어 건강이 나빠지고 자녀도 희귀병을 앓으면서 고엽제라는 연결고리를 찾았다고 한다. 2024년 7월 만들어진 고엽제 2세·3세 피해자 연대가 대표적이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1992년 국내 최초로 고엽제 환자 임상 사례를 알렸다. 2024년 현재까지 고엽제 1~3세 환자 1만여 명을 진료했다. 그는 고엽제의 3세 유전 위험에 주목, 역학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2024년 8월20일 인하대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마을 의사로 일하면서 첫 발견

—1992년 최초로 고엽제 환자를 신고했다. 어떻게 발견한 건가.

“달동네 마을 의사로 일할 때다. 진료를 보러 온 남성들 중 보행 장애와 손발 저림, 염소성 여드름 등이 나타나는 분들이 있었다. 특이한 증상이어서 ‘외국 다녀온 적 있냐’고 물었더니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평생 제주도 한 번 못 가봤다. 유일하게 가본 게 월남 참전”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월남전과 연관지어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 쪽에 이미 어마어마한 자료가 있었다. 연구책임자 젠킨스 박사한테서 관련 자료(일명 ‘젠킨스 보고서’)를 받아 번역해 한국에 뿌렸다. 그래서 한국도 월남전 참전군인 고엽제 피해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그 이듬해(1993년) 고엽제 후유증에 관한 국내 법이 만들어졌다. 1998년엔 2세 지원 조항도 생겼다.”

—한국 참전군인은 미군과 노출 양상이 비슷했나.

“많이 달랐다. 미군의 경우 주로 공군이 비행기로 고엽제를 살포하는 식이었다면 한국군은 직접 정글을 수색하는 식으로 고엽제에 노출됐다. 당시 고엽제 위험성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다보니 (군인들이) 시원하다거나 모기를 쫓을 수 있다면서 고엽제를 비처럼 맞는 일도 있었다. 이분들은 귀국하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돼 미군보다 상황이 훨씬 더 열악했다.”

—고엽제 2세 지원법이 만들어질 당시 2세 등록 인원이 1명에 불과했다.

“ 고엽제 환자들은 본인이 고엽제 피해가 있다는 것도 잘 밝히지 않는다. 자녀의 결혼 적령기에 그런 문제를 노출하는 것 역시 굉장한 부담이었을 테다. 실제로 첫 역학조사 때도 고엽제 2세 참여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환자로서 고엽제 2세를 본격적으로 만난 시점은 언제인가.

“2008년부터 간간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고엽제 환자인데 본인도 척추이분증 혹은 말초신경병이 발현된 분들이다. 2016년부턴 조금씩 늘어서 1년에 한두 명씩 찾아왔다. 법이 인정하는 고엽제 2세 질환(척추이분증·말초신경병·하지마비병변)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그러다 약 2년 전부턴 기존 질병 외에 다른 질병도 고엽제와 관련 있는지, 3세 선천성 기형아와는 관련이 없는지 묻는 분들이 나타났다.”

—베트남은 벌써 3세와 4세 피해가 확인됐다.

“베트남은 살던 곳 전체가 오염됐기 때문에 우리보다 피해가 훨씬 심했고 주로 여성들이 노출됐다. 워낙 기형아 보고가 많다보니 병원들이 사례를 따로 모아놓을 정도다. 그런데 미국은 주로 아버지를 통한 유전 피해라 베트남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부계를 통한 고엽제 노출은 모계를 통한 노출과 양상도 다르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보고가 많지 않았다. 한국도 미국과 같은 양상이어서 유전 피해가 제한적일 거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3세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면서 그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 되묻게 된다.”

“최근 3세 피해 호소 사례 점점 늘어”

—1~3세대끼리 유사한 병이 아니어도 유전으로 볼 수 있나.

“고엽제 독성 영향은 세포 단위에서 시작된다. 세포 유전자에 손상을 줘서 암세포를 만들거나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키는 등 세포 자체의 소기관이 다이옥신으로 손상되면서 여러 질병이 생겨난다. 이 중 생식세포에 영향을 주면 2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태아 발생부터 영향을 받으면 손상된 부위 세포가 여러 형태로 분화하면서 다양한 장기에, 다양한 형태의 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변이 양상이 줄어들 수도 있을까.

“우리 몸이 다음 세대에게 좋은 유전자를 주고자 하는 기전이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에 따라 일부 유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 기전은 조금 더 밝혀져야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난자와 만나려고 경쟁하는 2억 개 정자가 모두 다 손상된 건 아닐 수 있다. 혹은 엄마 쪽의 손상된 미토콘드리아가 자연 선택되느냐에 따라 기형이 다음 세대에 반영되지 않기도 한다. 유전이라는 건 그런 복잡한 기전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그러니까 ‘무조건 다 유전된다’ 그런 공포를 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2세와 3세까지는 일부 유전된다는 걸 확인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기존의 유전자 변이가 다음 세대한테 옮겨가지 않을 다른 방안이 있는지, 생식기술로서 그게 가능한지 봐야 될 것 같다.”

—지금도 선천성 유전병 인자를 부분 제거하는 생식기술이 있다. 고엽제 가족에게도 기술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정부가 고민해야 해결되는 부분이다.”

—최근 고엽제 2·3세 자녀들이 피해자 단체로 뭉쳤는데.

“현재 고엽제 2세는 일부 질환에 한해 법적으로 2세임이 인정되지만 3세는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 베트남과 미국엔 벌써 확인된 사례가 있다. 행정기관이 최소한 그런 정보라도 정확히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안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보니 환자분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법적 권리와 건강권을 찾고자 모이게 된 것 같다.”

—미국도 3세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도 3세 역학조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미 3세 피해가 어느 정도 나타났기 때문에 과학적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있는데 국가가 방치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조속히 역학조사를 하고 또 3세 피해자 인정 기준도 세워야 한다.”

“진단서 발급 기관 환자가 선택하게 해야”

—3세 질환 중 고엽제 유전이 의심되는 사례는 어떤 게 있나.

“3세의 척추이분증이나 말초신경병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 말초신경병은 신경 손상으로 인해 근육이 약화되는 식으로 발현된다. 그러니까 3세에게 근육 쪽 손상이 있으면 거꾸로 신경성 질환들이 나타나는 걸로 의심될 수 있다. 또 3세의 무혈성 괴사도 선천적 병변으로 흔한 경우는 아니다. 나이가 많으면 퇴행성 혈관 질환이 나타날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게 그런 질병이 나타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또 버거병 등 혈관 병변도 충분히 (유전으로) 고려할 수 있다.”

—3세가 겪는 질환이 일관되진 않는데.

“관련 질환 보고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1세 때도 그랬다. 굉장히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작해 악성 종양이나 당뇨, 신경성 질환, 근육·피부 질환까지 여러 형태로 많이 확대됐다. 2·3세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나 당뇨 등은 흔한 질병인데 고엽제 유전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문도 있다.

“그래서 병의 패턴을 봐야 한다. 일반적인 병 패턴보다 훨씬 더 발생 빈도가 높다거나 독특한 패턴이 나타나는지, 그게 유전과 관련 있는지 찾아보자는 거다. 그런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들끼리도 (고엽제 유전으로) 인정할 수 있다.”

—정부가 정기 역학조사를 한다지만 통계적 연관성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

“독성물질은 과학적 불확실성이 크다. 통계조사만 갖고는 유전 피해를 다 파악할 수 없다. 한국은 고엽제 피해가 큰 국가임에도 동물실험 등 고엽제 피해 연구 성과가 상대적으로 적다. 유전 피해를 제대로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환 전문의가 2024년 9월10일 고엽제 피해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고엽제 2세 인정 문턱도 매우 높다. 대학병원 진단서를 받아도 보훈병원 신체검사에서 탈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훈병원은 2차병원, 대학병원은 3차병원이다. 그런데도 3차병원 전문 인력이 검사한 결과가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된다. 환자들이 ‘기준에 미달한다더라’고 말하는데 정작 그 기준은 뭐고 왜 미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굉장히 자의적인 판단이다.”

—고엽제 심사·보훈 체계가 어떻게 바뀌어야겠나.

“보훈 병원도 중요한 진단 기관이지만 진단서 발급 기관이 꼭 보훈병원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느 기관에서 받을지 환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 판단이라면 그 판단의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그 기준에 맞춰 여러 병원이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으로는 지원을 해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한 사람이 많아진다.”

—정부가 피해자 발굴에 소극적인 이유로 예산 부족이 지목되는데.

“꼭 그렇진 않다. 고엽제 피해 양상은 월남전 참전이라는 특수한 집단에 국한된다. 월남 참전군인이 30만 명 정도라면 그중 피해를 당한 1세로, 또 2세 중에서도 피해자로 국한되기 때문에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지금 고엽제 후유증으로 등록된 인원도 7만 명 수준에 그친다.”

화학물질 피해 조사·보상 체계 단단히 해야

—피해자 요구를 덮어놓을 게 아니라 사실 여부를 조사하자는 취지인가.

“그렇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엽제 후유증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고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있으면 당연히 지원해야 한다. 벌써 피해자들이 있고 고엽제와 연관 있다는 외국 연구 결과가 뒷받침하는데 우리가 그 부분을 백안시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참전자들은 국가가 어려울 때 국가 요청을 받고 참여한 분들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이분들을 지켜주는 게 훨씬 성숙한 사회다.”

—한국은 메탄올 실명 사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화학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화학물질 피해에 관한 조사·보상 체계를 갖추는 건 고엽제 환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닐 텐데.

“그 부분을 매우 강조하고 싶다. 한국의 화학물질 안전체계는 선진국에 비춰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독성에 대한 등록 수준과 모니터링, 환자 발굴과 조기 치료 등이 제대로 안 된다. 그렇기에 화학물질 피해를 하나하나 규명하고 과학적 기준을 세워서 관련 기초지식을 단단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앞으로 화학물질을 안 쓸 게 아니라면 미래를 위해서도 그런 체계가 필요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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