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여도 괜찮아, 그게 너니까…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남녀 간에 사랑을 한다고 하면 으레 에로스적인 관계를 떠올리곤 한다.
남자와 여자는 깊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게 통념처럼 굳어진 한국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언희 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를 보고서 이 작품을 로맨틱 코미디쯤으로 오해할 만도 하다.
어깨동무를 한 채 얼굴을 맞대고 활짝 웃는 재희(김고은 분)와 흥수(노상현)의 모습은 영락없는 커플 같다.
서로를 친구라고 굳게 믿었던 두 사람이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뻔한 스토리가 연상된다.
하지만 재희와 흥수는 우정보다도 더 진한 사랑을 하는 진짜 친구 사이다. 스무살 철부지 때 만난 두 사람이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기까지 동고동락하며 솔메이트가 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이 작품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에 나오는 '재희'를 뼈대로 했다. 원작 소설처럼 흥수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재희와 관련된 스토리와 디테일을 추가해 그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영화는 2010년 서울의 한 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난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학과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흥수와는 다르게 유학파 출신의 자유로운 영혼 재희는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친해질 일이 결코 없어 보이는 둘은 우연한 기회에 가까워진다. 흥수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재희가 알게 되면서다. 흥수는 삽시간에 학교에 소문이 퍼질 거라 예상하지만 재희는 그의 비밀을 지켜준다.
두 사람은 음주와 유흥을 즐기고 정조 관념이 희박하다는 공통 분모 아래 금세 친해진다. 밤새 술 마시고 춤추다 각자 원하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에 다시 만나 해장술로 속을 달랜다. 이태원의 낡은 빌라에서 같이 살면서부터는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들을 진정으로 결속시키는 건 술도 춤도 아니다. 세상으로부터의 편견이다.
벽장 속 게이로 살아가는 흥수는 재희 앞에서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보여줄 수 있다. 색안경을 낀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는 재희 역시 흥수에게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두 사람은 서로에 의지해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처럼 차츰 성장해나간다.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게이 친구를 가진 여자라는 설정을 일종의 로망을 표현하는 데 소모하지 않는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결핍을 지닌 두 인물이 만나 빈구석을 채워주며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모습을 그린다.
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여겨지는 둘이지만, 삶의 궤적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가진 건 젊음과 체력뿐이던 20대 초반을 지나 취업을 준비하고, 개성 없는 직장인이 돼 찬란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본다.
그 사이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한다. 재희와 흥수는 이 모든 순간에도 함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와 흥수 각자의 사랑 이야기이자 두 사람이 주고받는 사랑 이야기인 셈이다.
이들의 13년을 보는 관객은 자기 삶을 반추하는 한편 서로를 가진 재희와 흥수가 못내 부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받을지라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친구가 얼마나 괴짜인지, 성별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는 둘의 관계와 끈끈한 연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김고은과 노상현의 '케미스트리' 덕이 크다. 실제로 한 살 터울인 두 배우는 서로를 낱낱이 아는 오랜 친구처럼 극에 녹아든다.
올해 초 '파묘'에서 무당 화림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고은은 보다 편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풋풋하지만 불안하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지만 속은 여린 감정 연기 또한 훌륭하게 소화한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로 얼굴을 알린 노상현 역시 스크린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제 몫을 해낸다.
10월 1일 개봉.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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