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눈물로 사로잡았다... 장나라 '명랑 소녀' 틀 깨다
"단점 많은 연기자, 배역 한정적...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을까' 제일 고민"
"내 딸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SBS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주인공 차은경(장나라)은 이렇게 울부짖으며 상대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차은경이 격노한 상대는 남편과 외도를 저지른 직장 동료. 신의를 저버린 것도 모자라 남편과 바람이 난 뒤 임신한 사실을 내연녀가 딸에게까지 알렸다는 얘기를 듣고 차은경은 이성을 잃었다. 내연녀의 집을 찾아가 "죽고 싶어?"라고 고함치는 그의 눈은 살의로 번득였다. 비를 쫄딱 맞은 그의 머리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장나라가 이렇게 광기 어린 엄마의 얼굴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적이 있을까. 드라마 종방 후인 23일 서울 종로구 소재 관광플라자에서 만난 장나라는 "엄마가 절 생각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장나라가 "엄마 생각"하며 연기한 이유
이 장면이 전파를 탄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엄마인 내 가슴에 (차은경의 마음이) 완전히 포개진다. 장나라의 연기에 나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시청률 40%를 웃돈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2002) 속 밝고 순수한 시골 소녀 연기로 오랫동안 '캔디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장나라의 파격 변신으로 나온 반응이다. 그는 "단점이 많은 연기자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는 배역이 한정적이었다"며 "그래서 대본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다른 걸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를 제일 먼저 고민한다"고 '굿파트너'를 선택한 계기를 들려줬다.
"성인 배역 새로운 분기점" '명랑 소녀'는 없다
장나라는 '굿파트너'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로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하는 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혼란 그리고 '워킹맘'으로서의 위기를 폭넓게 보여줬다. 그간 그는 드라마 '고백부부'(2017) 등을 통해 성인 배역에 대한 변화를 꾸준히 시도했지만, '명랑소녀 성공기'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랬던 장나라가 '굿파트너'에서 서서히 감정을 쌓아가며 분노를 폭발하면서도 일하느라 멀어진 딸과 가까워질 때의 조심스러운 감정을 잘 보여주며 성인 배역 연기의 분기점을 마련했다"(박진규 드라마평론가)는 평가다.
연기 변신을 위해 올해 데뷔 23년 차인 장나라는 발성부터 바꿨다. 대사를 짧게 뚝뚝 끊어 읽어 전문직의 날카로움을 부각했다. 장나라는 "변호사인 작가님이 법률 서류 보는 방식부터 세심하게 촬영 전 따로 만나 하나하나 알려줬다"고 촬영 준비 과정을 들려줬다. 2022년 결혼한 장나라는 극 중 남편의 불륜에 '과몰입'해 연기했다. 그는 "극 중 남편이 이혼 소장 받고 저한테 따지듯 전화할 때 촬영하면서도 (너무 화가 나) 머릿속 퓨즈가 끊기는 기분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반전 연기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는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7.8%로 출발했던 '굿파트너' 시청률은 지난 20일 마지막 방송에서 15.2%로 치솟았다. 최근 1, 2년 새 방송된 JTBC '신성한, 이혼', ENA '남이 될 수 있을까' 등은 모두 시청률이 한 자릿수였다. 이혼 소재 법정 드라마는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흥행 이변이다.
'굿파트너'는 최유나 이혼 전문 변호사가 현장 경험을 살려 직접 대본을 썼다. "'사랑과 전쟁' 등 불륜 과정에 집중한 기존 이혼 드라마와 달리 '어떻게 하면 이혼을 잘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해 새로움을 주고, 주인공인 두 여성 변호사가 짝을 이뤄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모습으로 쾌감을 끌어올린 게 흥행 비결"(복길 드라마평론가)로 꼽힌다. 장나라는 "아파트에 사는데 주민 어르신들이 '잘 보고 있다'고 말씀 많이 해주셔서 '아, 많은 분이 보고 있구나'라고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최선 다해도 한계 보여" 장나라의 고민
장나라는 최근 3, 4년 동안 배우로서 침체기를 겪었다. 그가 출연한 '오 마이 베이비' '대박부동산' '패밀리' 등이 줄줄이 시청자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나라는 "요즘 연기를 하면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아 괴로웠다"고 고충을 들려줬다. 가수와 배우로 2000년대 중국에서 '원조 한류 스타'로 인기를 얻던 장나라는 2010년대 극심한 불안증과 무대 공포로 고생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안 되는 대로 어디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도전했다. 그가 '굿파트너'를 통해 배우로 다시 존재감을 보여주게 된 과정이다.
장나라는 2001년 시트콤 '뉴 논스톱'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세. 노래 '스위트 드림'(2004)으로 가수로도 사랑받던 옛 '청춘 아이돌'은 2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젠 촬영 현장에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자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아 걱정된다고 하니 장나라는 '처음 찍을 때의 그 마음으로 밀고 가자'고 도리어 안심을 시켜줬다"(드라마 'VIP' 이정림 PD). 장나라는 또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요. 시청자를 기대하게 하는 연기도 하고 싶고요. 연기를 계속해도 제 부족한 점이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계속 노력해 보려고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민지 인턴 기자 maymay0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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