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본다는 것은

2024. 9.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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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록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

인류는 고대로부터 바위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 그림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벽화는 고구려인의 용맹한 사냥 장면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했다. 후대에서 '시각'이라는 매개로 고대의 그림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그림'이라는 시각의 전달체는 사실화로부터 시작해 추상화를 거쳐 현대 예술의 설치 미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상상력과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눈을 자극했다. 19세기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매체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10년 전 국내에서 사실주의 사진가인 세바티앙 살가도의 '제네시스'라는 전시회에 간 기억이 난다. 여러 작품들 중 어둠 속의 웅덩이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작가를 쳐다보던, 영롱하고 빛나는 표범의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아마 시각을 통해 들어온 빛의 조합이 뇌에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한 탓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가 보다.

바야흐로 현대는 사진을 넘어 영상의 시대이다. 간단한 무성흑백에서 시작한 영상은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는 컬러의 시대를 넘어, 이제 홀로그램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수많은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넘쳐나고, 이제 영상에서 세상을 배운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눈이라는 기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눈은 세상의 형상을 뇌에 전달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중요한 기관이다. 흔히 눈은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와 원근에 따른 사물의 모양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수정체, 이렇게 모여진 사물의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망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망막은 눈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여 빛을 감지하고 이를 전기신호로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흑백에 민감한 세포와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감지해 색을 인식하게 하는 세 종류의 세포가 있다. 이러한 세포에는 신경다발이 연결돼 있어 시각정보를 뇌로 전달해 시각적 인식을 형성한다.

눈에는 두 가지 액체가 들어 있는데 방수는 수정체와 각막 사이의 공간을 채워 눈의 모양을 유지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액체이고, 유리액은 눈의 모양 유지에 도움이 되는 젤 같은 액체이다. 이 액체의 대부분은 물이다. 비록 물고기를 대상으로 했지만, 최근 한 연구에서 녹색 빛 파장이 물고기의 망막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청색 파장은 물고기의 망막세포에 활성산소를 생성시켜 세포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듯 빛이라는 파장이 망막세포에서 반응해 활성산소와 같은 화학물질을 생성하기도 하고 세포에 자극을 주어 세포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빛이라는 파장이 어떻게 망막세포 내에서 변화돼 신경세포로 전달이 될까? 빛을 흡수하는 망막세포의 판형 구조는 우리가 흔히 영양제로 섭취하는 비타민A에서 유래한 레티날과 옵신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즉 레티날이라는 화합물이 빛에 반응해 망막세포 내에서 여러 단백질의 도움을 받아 화학반응을 거친 후 전기신호로 전환돼 시신경에 전달된다. 그래서 레티날의 전구체인 비타민 A가 부족하면 눈이 빛을 잘 감지하지 못하고 야맹증으로 발전한다.

당근에 많이 포함된 적황색 색소인 베타 카로틴은 간이나 장에서 비타민A로 변환되는 대표적인 화합물이다. 적당량의 비타민A 섭취는 눈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당근과 같은 베타 카로틴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권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의 메커니즘도 화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류의 태초부터 시작된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은 결국 '시각'이라는 기본적 감각에서 출발하며, 그 근본에는 화학적 작용이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각의 중요성은 예술뿐 아니라 기술, 산업 전반에 걸쳐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김광록 한국화학연구원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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