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37] 분리 수면 자발적 실패기

교사 김혜인 2024. 9. 24.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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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잠을 자던 아이가 “푸힛”하고 소리 내어 웃는다. 무슨 즐거운 꿈을 꾸는 걸까?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난다. 아이와 함께 잠을 자면서 얻은 기쁨이다.

지금은 아이와 함께 자는 시간이 가장 큰 행복이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아이를 따로 재웠다. 많은 엄마들이 꿈꾸는 ‘분리 수면’에 일찌감치 성공했다. 아이를 잠자리에 눕히고 “잘 자” 인사한 뒤 불을 끄고 방에서 나왔다. 그러면 아이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잠들었다.

나는 꽤 독한 엄마였다. 아이가 4개월이 되자마자 수면 교육을 시작했다. 아이가 젖을 물고 자거나 엄마 품에 안겨서 잠들지 않고, 잠자리에 누워 아이 스스로 잠드는 습관을 들이는 교육이다.

바로 방도 분리했다. 잘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 준 뒤 침대에 눕히고 방에서 나왔다.

당연히 아이는 처음에 많이 울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15분이 넘기 전에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다. 다만 아기 침대에 설치한 카메라를 보며 아이가 안전한지만 살폈다. 15분이 지나도 아이가 계속 울면 방에 들어가서 달래주었다. 아이를 달랜 뒤에도 다시 자리에 눕히고 나왔다. 이런 과정을 수십 일 반복하자 아이는 결국 혼자 누워서 자는 법을 터득했다.

분리 수면의 맛은 달콤했다. 육아에서 벗어나는 ‘육퇴’가 조금이라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방 밖에서 카메라를 통해 아이가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켤 수 있다. 때로 집에 손님이 왔을 때도 아이만 먼저 방에 눕힌 뒤 손님과 좀 더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분리 수면은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며 부부 중심의 삶을 잃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과도 잘 맞았다.

그러나 올해 초, 2년 가까이 유지해 온 분리 수면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소아정신과 의사가 아이 발달 지연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애착 및 상호작용 검사를 해보자고 한 뒤부터였다.

'애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놓쳤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만일 애착에 문제가 있다면 왜일까? 혹시 수면 교육 때문일까?

이전에 수면 교육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으며 분리 수면이 애착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애착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기질이 예민한 아이일수록 수면 교육이 도움이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수면 교육 과정에서 아이의 불안감이 더 높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아이가 어두운 방에서 홀로 울면서 잠들었을 수많은 밤을 떠올리자 죄책감에 죽을 것만 같았다.

희한하게도, 소아정신과에 다녀온 뒤부터 갑자기 아이가 한밤중에 울면서 깨는 날이 잦아졌다. 마치 이제는 내가 아이와 함께 자야 한다는 신호인 것 같았다. 애착 및 상호작용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아이가 잠들고 깨는 시간에 엄마가 곁에 있다면 불안을 낮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으로 아이 곁에서 자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소아정신과에서 진행한 여러 검사에서 나와 아이의 애착 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진단됐다.

또 다른 치료사는 아이가 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이런 정도는 분리불안이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문제를 전공한 대학 교수도 수면 교육이나 분리 수면이 아이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논문이 여럿 있다고 알려줬다.

아이를 키우며 예전에 기록했던 노트를 꺼내 보았다. 아이 생후 2~3개월 내내 아이를 얼마나 재우기 힘들었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아이를 안은 채 흔들며 토닥이고 입으로는 ‘쉬’ 소리를 내고 아이에게 쪽쪽이를 물린 뒤 겨우 재웠다고 써 놓았다. 아이는 잠투정이 유독 심했다. 수면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메모를 보며 아이를 울린 지난날을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애착 문제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 분리 수면은 괜히 포기한 꼴이 되었지만 아이와 함께 잠들며 새로운 기쁨을 얻었다. 아마도 아이를 따로 재워봤기에 새삼 알게 된 기쁨일 테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하는 옹알이, 뒤척이다 내 품에 파고들 때의 살결, 꿈을 꾸며 웃거나 우는 소리, 아침에 잠에서 깨어 나를 바라보는 눈......

잠든 아이 발을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는 내 한 손에 발이 들어오지 만큼 훨씬 자라서 내 곁에서 자려고 하지 않겠지.

나의 분리 수면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 모두 그립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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