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이후 이어진 ‘문재인 신뢰’ 하락세 [2024 신뢰도 조사]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례적 인물이다. 박한 평가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난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42%라는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김대중(24%), 노무현(27%), 이명박(24%) 전 대통령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이상 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 임기 마지막 분기 평균). 2022년 5월9일 마지막 퇴근길에 나선 문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상징 색깔인 파란 풍선이 넘실거렸다.
올해 8월1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문 전 대통령의 영상 축사가 시작되자 전당대회에 참석한 당원들이 웅성거렸다. 심지어 일부 당원들은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불리기만 해도 환호성이 터져나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시사IN〉은 2007년부터 매해(2008년, 2011년 제외)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은 누구인지’ 물었다. 퇴임 직후인 2022년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5.1%라는 높은 기록과 함께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10.9%로 전직 대통령 중 가장 큰 낙폭(-4.2%포인트)을 보였지만, 각각 진보·보수 진영 상징인 노무현·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3위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올해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년 연속 가장 큰 낙폭(-1.7%포인트)을 기록하며 오차범위 안이긴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3위 자리를 뺏겼다(〈그림 2〉 참조).
어떤 인구집단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을까? 핵심 지지층이었던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탈이 가장 눈에 띈다. 2022년엔 민주당 지지자 29%가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했지만 그 비율이 작년엔 22.3%, 올해는 17.1%로 하락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올해 18.4%를 기록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추월했다. 그 밖에도 문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은 거의 대부분 인구집단에서 반절 가까이 떨어졌다. 국민의힘 지지자 등 애초부터 신뢰도가 낮았던 집단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퇴임 첫해 수준으로 문 전 대통령에게 가장 높은 신뢰를 갖고 있는 인구집단은 18~29세 여성(30.9%), 서울 거주자(12.3%)밖에 없었다(〈그림 1〉 참조).
뚜렷한 ‘문재인 신뢰’ 하락세는 민주당 지지자, 40·50대 등 이른바 ‘노무현 신뢰 그룹’ 내 신뢰도 재편 결과로 해석된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자를 합산해보면 2022년(44.9%), 작년(43.3%), 올해(45.9%) 사이 차이가 매우 적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계승자로 여겨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2년 조사에 포함되면서 ‘노무현 신뢰 그룹’은 분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하락하고 그 하락 폭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라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근 본의 아니게 정국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다. 이른바 ‘전(前) 사위 특혜 채용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전주지방검찰청은 8월3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했다(이번 조사는 해당 압수수색 직전인 8월25~27일 이뤄졌다). ‘친(親)문재인계’ 의원들은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비판하며 당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전 정권 정치 탄압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던 친문·친명계가 검찰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결집하는 모양새다.
건국절 띄우기에도 미미한 ‘이승만 신뢰’
2024년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은 노무현(36.7%), 박정희(21.8%), 김대중(12.4%), 문재인(9.2%), 이명박(4.2%) 순이다. 2007년 첫 조사 때부터 줄곧 1위를 기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2012년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밀리면서 오차범위 내 2위가 되었고, 2016년에는 오차범위 밖 2위로 밀려났다. 이후 2022년 오차범위 내 2위를 기록한 때 외에는 줄곧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1위를 내주고 있다.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거의 변함이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0.2%포인트, 이명박 전 대통령은 0.1%포인트, 박근혜 전 대통령은 0.5%포인트 지난해에 비해 하락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심 신뢰 집단은 여전히 60대 이상 남녀, 대구·경북, 국민의힘 지지자였다. 다만 50대 남녀에서 ‘박정희를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지난해 대비 각각 10.3%포인트, 5.9%포인트 하락한 점이 눈에 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3년 퇴임 이후 2021년에 가장 높은 신뢰도(5%)를 기록했는데, 이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그룹이 여전히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의 4.2%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하는 가운데 18~29세 남성의 21.1%, 직업군 중 학생 22.4%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다. 30대 남성 역시 15.2%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평균(4.2%)을 훌쩍 넘는 신뢰를 보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권 차원에서 ‘건국 대통령’으로 띄우려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뢰한다는 응답이 높지 않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1.7%로, 지난해(1%)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2022년(1.9%)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1.8%)과 비슷한 수준이다.
보수 지지자로 그 범위를 한정해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신뢰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라고 답변한 사람 중,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박정희·노무현·이명박·김대중·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층이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 6위에 이름을 올렸다. 7위를 기록한 문재인 전 대통령(2.3%)과도 차이가 미미하다.
다만 국민의힘 지지자 사이에서는 ‘이승만 신뢰’ 응답이 보수 성향 집단보다는 높게 나온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4.2%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다. 박정희·이명박·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4위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수치다. 연령·성별 기준으로 나눈 집단 중 ‘이승만 신뢰’ 응답이 가장 높은 집단은 70세 이상 여성이다. 7.4%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반면 같은 연령대임에도 불구하고 70세 이상 남성의 ‘이승만 신뢰’ 응답은 1.2%에 그쳤다.
■ 이렇게 조사했다
- 조사 의뢰: 〈시사IN〉
- 조사 기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조사 일시: 2024년 8월25~27일
- 조사 대상: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 조사 방법: 가구 유선전화 RDD 및 휴대전화 RDD를 병행한 전화면접조사(CATI)
- 응답률: 6.6%(무선 7.2%, 유선 3.8%)
- 가중치 부여 방식: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2024년 7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인구 기준)
- 표본 크기 : 1008명
- 표본 오차 : ±3.1%포인트(95% 신뢰 수준)
*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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