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이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잘해?” [새로 나온 책]
돌봄의 얼굴
김영희 외 지음, 옥희살롱 기획, 봄날의책 펴냄
“어르신 잠깐만요, 사진 한번 찍을게요.”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흰 구름이 뭉게뭉게 예쁜 날, 조금 전 밥을 먹은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어르신이 오귀자 요양보호사의 서비스에 대해 말한다. “이보다 어떻게 더 잘해?” 치매 노인의 보호자가 장기요양서비스 세 시간의 절반을 수학 학습지, 끝말잇기 같은 수업으로 채워달라고 하는데 노인은 죽어도 공부가 싫단다. 아예 눈을 감고 시위를 한다. 김춘숙 요양보호사는 난감하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옥희살롱에서 ‘요양보호사를 위한 온라인 사진+글쓰기 워크숍’이 열렸다. 요양보호사들이 노인의 집에서, 주간보호센터와 요양 시설에서 자신의 일상을 글로 써 내려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노인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
마쓰시타 류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힐데와소피 펴냄
“사형을 선고받고 옥중에 있는 생면부지의 정치범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으나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1974년 8월,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빌딩에서 폭탄이 터진다. 자칭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이 벌인 일이다.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은 과거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책임을 망각한 일본과, 아시아 곳곳에서 노동력을 착취해온 전범 기업을 상대로 폭탄 투쟁을 벌였다.
픽션 작가인 저자는 1984년 테러 주범 다이도지 마사시의 옥중 편지를 받는다. 저자의 첫 책 〈두붓집의 사계〉를 읽고 감동했다는 내용이다. 이 일을 계기로 편지가 오갔고, 면회를 하게 되었다. 저자는 다이도지 마사시에게 주목해 폭탄 투쟁을 시작한 계기와 과정, 체포 이후의 회고와 반성을 따라가며 그 사건의 기억을 복원한다. 책과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다.
빵과 장미
브루스 왓슨 지음, 홍기빈 옮김, 빵과장미 펴냄
“빵도 장미도 거저 얻을 수는 없다.”
〈1912년 2월 어느 날, 어린이 100여 명이 탄 기차가 미국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역에 도착했다. 군중 5000여 명이 ‘라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어린이들을 맞았다. 기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행진하며 ‘우리는 파업 노동자!’라고 연호한다. 아이들은 장기 파업이 진행 중이던 섬유 도시 로런스에서 왔다. 뉴욕 시민들이 자본과 공권력의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아이들을 잠시 맡아 돌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지만 오랫동안 그 실상이 은폐되어온 1912년 ‘로런스 파업’에 대한 보고서다. 전 세계 51개국 이민자들로 구성된 로런스 노동자들이 빈곤과 총기까지 동원한 공권력의 탄압, 언론의 가짜뉴스, 민족과 언어, 직종과 성별의 차이를 넘어 연대하고 승리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예술가의 창조적 진실
마크 로스코 지음, 김주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아버지 마크 로스코에 관하여.”
오로지 색·선·면으로 채운 그림,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난해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는 대중적 인기와 천문학적 낙찰가. 20세기 대표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가 생전에 쓴 글이 공개됐을 때, 미술계는 또 한 차례 술렁였다. 예상과 달리 작품 해설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유명한 화가라는 사실조차 감춘 이 기록은 예술가의 ‘본령’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예술은 시대를 따르는 동시에 거역할 의무를 지녔다는 말은 그의 작품 세계를 지탱해온 철학이자 동료들에게 전하는 당부다. 편집자를 자처한 그의 아들이 흩어진 기록을 직접 다듬고 엮으며 작가의 진심을 전하려 애썼다.
재앙의 지리학
로리 파슨스 지음, 추선영 옮김, 오월의봄 펴냄
“만일 한 곳이 깨끗하기 때문에 나머지 한 곳이 파괴된 것이라면?”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선진국 대도시들의 대기질은 대폭 개선됐다. 개발도상국도 ‘선진국의 길’을 따르면 지구가 더 깨끗해질까? 저자는 부정적이다. 부유한 세계가 더 안전하고 건강해진 까닭은 ‘더러운 과정’을 외주화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유럽과 미국에 있던 공장이 대거 남반구로 갔다. 오염물질의 총량은 유지되거나 늘어난다. 선진국 언론에서 집중 조명하지 않을 뿐이다. 책은 이 과정을 ‘탄소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개인이 플라스틱 빨대나 비행 횟수를 줄이는 것 정도로는 끊을 수 없는 고리다. 글로벌 대기업에 환경오염 유발 비용을 물리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적는다.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동양북스 펴냄
“‘당연하지!’라는 말은 자연에서 왔다.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제일 많이 알려진 독일어는? 아르바이트다. 전 세계로 넓힌다면? 단연 옥토버페스트다. 이 책을 통틀어 알게 되어 가장 흡족한 독일어는 ‘비어야케(Bierjacke)’다. ‘술을 마시다 보면 취기가 올라 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을 의미한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차갑기 그지없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 밀려드는 고통과 슬픔’을 뜻하는 벨트슈메르츠(Weltschmerz)라는 단어를 소개하는 챕터를 읽다가 웃기도 했다. 한국어에는 없지만 실재하는 상황과 감정에 대해 어쩐지 ‘이걸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단어를 통해 나와 타인을, 한 사회의 가치와 지향을 살펴본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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