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자위대·신사 참배…자민당 총재 ‘3강 후보’ 입장 분석

홍석재 기자 2024. 9. 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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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경륜 풍부 당내 세력 부족
고이즈미, 당선되면 최연소 총리
다카이치, 아베 지원 받았던 극우
‘시대는 누구를 원하는가?’ 오는 27일 총재 선거를 알리는 일본 자민당의 포스터. 자민당 누리집 갈무리

사실상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짓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오는 27일 열린다. 당 총재 역사상 최다인 9명의 전현직 각료 후보가 무더기 출사표를 던진 것은 역설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자민당의 형편을 보여준다.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 포스터에는 이런 글이 아로새겨졌다. ‘시대는 누구를 원하는가?’

전례 없이 많은 후보가 난립했지만, 선거 종반 양상은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담당상의 ‘3파전’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일본 민영 니혼티브이(TV)는 지난 21일 자민당 당원·당우 전화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지지율 31%,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이 27%,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14%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의원 표는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지지통신이 자민당 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고이즈미 전 환경상 지지 의원이 50명이 넘어 가장 많았으며, 다카이치 경제안보상과 이시바 전 간사장은 30명 전후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출사표에서 “38년 정치 인생을 집대성하는 최후의 싸움”이라는 말로 이번 선거에 배수진을 쳤다. 다섯번째 총재 도전이다. 오랜 경륜은 그의 최대 무기로 ‘정책 지상주의’ 등 펴낸 단독 저서만 10권이 넘는다. 12선 의원이자 당 간사장 두차례, 정무조사회장을 한차례 지냈으며, 각료로는 방위청 장관, 방위상, 지방창생·국가전략특별구역담당상 등을 두루 거쳤다.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돗토리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그는 오랫동안 인구 감소와 지방 경제에 대해 매달려왔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 판결 뒤 “이번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독립국이었던 한국을 합병하고 성을 바꾼 역사(창씨개명)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치인이며, 최근 낸 저서 ‘보수 정치가 나의 정책, 나의 천명’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현행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력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9조 2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하자고 주장한다. 다만 총재 선거 출마 선언 이후에는 최근 자민당이 헌법 9조를 조문은 그대로 두면서 자위대 근거 규정을 새로 신설하는 안으로 논점 정리를 한 것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자위대 근거 규정안은 2017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는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을 주장하고 주일미군 관련 협정인 미-일 지위협정 개정도 주장한다.

약점은 당내 세력 부족이다. 이 때문에 그는 2015년 자신이 이끄는 파벌인 ‘이시바파’를 만들었으나, 세력이 확대되지는 못했고 2021년 느슨한 의원 연맹으로 재편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당선되면 일본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될 수 있다. 이전까지 최연소 총리는 44살 때 총리에 올랐던 이토 히로부미였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파벌에 처음부터 얽혀 있지 않아 자민당 최대 아킬레스건인 비자금 파문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전면에 ‘헌법 개정’과 ‘강한 경제·외교’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했고, 시대 변화에 따라 헌법도 바뀌어야 한다”며 자위대의 설립 근거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헌법 개정을 급히 추진할 의사는 없다고 내비치고 있는 반면,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총리가 되면 전력을 다해 국회에서 헌법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한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해마다 8월15일 참배해왔다.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지난 6일, 총재가 된 이후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경제 분야에서는 “임금 인상과 일손 부족 해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 등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해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가 여론과 민심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무파벌 의원들 사이에 영향력이 큰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다.

강점은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이지만, 약점은 경륜 부족에 대한 우려다. 환경상이었던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질문에 “기후변화 같은 스케일이 큰 문제를 다루려면 즐거워야 하고, 멋져야 하고, 섹시해야 한다”고 말해 비판을 받은 일이 유명하다.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이번 선거 중반 최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뒤 일부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과 이시바 전 간사장을 누르는 등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후보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는 2022년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의 비판 예상에 대해 “도중에 참배를 그만둬 어중간하게 되면, 상대가 기어오른다”고 말했다. 헌법 9조 2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주장해왔다.

지난 9일에는 방송에 출연해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 중 핵무기를 반입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핵 3원칙을 형해화할 수 있다는 발언이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일본 민영 방송 앵커 출신으로, 소속 파벌은 없으나 2021년 총재 선거 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1차 투표 때 3위를 했다. 이번에 출마 선언을 하면서도 아베 전 총리를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 중에는 옛 아베파가 많다. 슬로건으로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를 들고나왔고,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린다는 공약이 눈에 띈다. ‘아베노믹스’를 사실상 계승하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언론인이 ‘키티를 좋아하는 헤비 스모커(골초)’, ‘아저씨와 소녀의 양면성을 모두 지녔다’고 평가할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로도 알려졌다.

‘빅 3’가 지지율 70%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나머지 후보 6명은 사실상 선두권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22일 이시카와현 폭우 상황이 심각해지자 “재해 대응을 진두지휘하겠다”며 선거 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앞두고 “국익을 위해 외교에 종사해온 입장에서 (총재 선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미국으로 떠나는 등 선거 막판 4위 이하 그룹은 다소 맥이 빠지는 모습이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은 현재 일본이 보유하지 않고 있는 원자력잠수함 보유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는 등, 출마 후보 대부분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매파적 발언을 내놓고 있는 점도 이번 총재 선거의 특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 국제 안보 환경이 엄혹해진 영향과 일본의 보수화 그리고 선거에서 눈에 띄기 위한 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1차에서 당 현역 국회의원 368명이 1표씩, 전국 105만명 당원·당우 투표를 368표로 나눠 비례 배분한다.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상위 2명이 결선을 치른다. 국회의원 전원은 새로 투표하지만, 당원·당우들은 1차 투표 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체 47표만 주어진다. 일본 전국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 47곳) 수와 같은데, 1차 투표에서 얻은 표수를 각 도도부현별로 따져 상대보다 당원·당우 표를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해당 지역에 배정된 ‘1표’를 가져간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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