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춧값' 중국산 철강, 칠레 삼키더니…최대 제철소·2만 일자리 '와르르'

김성진 기자 2024. 9.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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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시멘트가 온다]②
[편집자주] 정부와 건설업계가 값싼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추진한다. 시멘트사가 유연탄 가격 안정화에도 시멘트 가격을 낮추지 않자 꺼내든 압박 카드다. 시멘트사는 정부 탄소저감정책에 따라 매년 수천억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중국산 시멘트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시장을 장악한다면 요소수 대란 때처럼 중국의 공급 무기화 가능성도 생겨나게 된다.

"중국산 철강은 인제 그만"

지구 반대편 칠레의 우아치파토(Huachipato) 근로자들은 올초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가 시위했다. 한때 칠레 최대의 제철소였던 우아치파토는 값싼 중국산 철강에 밀려 2년 넘게 적자를 면치 못했고, 사측은 지난 16일부로 제철소를 폐쇄했다. 임직원 27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외신은 우아치파토와 간접적으로 연관된 지역의 2만여 일자리도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다.

칠레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2016년부터 중국산 철강에 관세를 여섯차례나 부과했다. 중국 정부가 "양국의 관계를 해친다"며 압박해도 지난 4월에 관세를 추가로 부여했다. 하지만 자국 산업이 입은 피해를 돌이킬 순 없었다. 이제 칠레의 철강 산업은 고사 직전이다. 지난해 벌써 철강의 65%를 중국산에 의존했고, 우아치파토 폐쇄로 더욱 중국산 철강에 잠식되게 됐다.
중국산에 공든 산업이 무너진다
외국의 중국 밀어내기 수출 견제/그래픽=이지혜
우아치파토는 칠레 정부가 79년 전 직접 출자해 설립한 제철소다. 전세계에서도 큰 수준인 칠레의 철광석 매립지 '페쿠 도밍가'를 활용했다. 그런데도 중국산의 유입은 견뎌내지 못했다. 중국산이 도저히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쌌기 때문이었다. 중국산 철강은 이달 기준 1톤당 3000위안(한화 57만원)이다. 중국산 배추 가격(1gk당 3위안)과 맞먹는다.

중국산이 싼 것은 재고를 소진하는 '밀어내기식 수출' 때문이다. 중국은 전세계에서 철강산업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곳 중 한곳이다. 지난해 전세계 철강의 54%를 중국에서 생산했다. 하지만 2021년 헝다 사태로 중국의 건설경기가 침체하고 철강 수요가 쪼그라들자 중국은 갑작스런 수요 감소에 대응하지 못해 재고를 외국에 팔기 시작했다. 제철소는 생산설비를 1600도의 고열로 꾸준히 달궈야 해 주문이 없어도 설비를 웬만하면 중단하지 못한다. 설비를 중단하면 재가동에 수개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 1~8월에만 철강 7000여만톤을 해외에 팔았다. 그런데도 재고는 전년보다 약 50% 늘었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 국가들, 그리고 전세계의 철강회사들도 중국의 밀어내기식 수출에 적자를 면치 못했다. 세계 최대 기업 아르셀로미탈은 "중국의 공격적인 과잉 생산에 철강 가격이 한계비용(철강 1개 생산에 드는 비용) 아래로 떨어졌다"며 "시장이 무너질 수준"이라는 입장까지 냈다.
외국은 이제 중국산에 손사레...한국 정부는 "시멘트 수입"
석유화학도 중국의 플라스틱 원료 과잉 생산과 밀어내기 수출에 베트남 등이 큰 타격을 입었고, 국내 산업도 공장의 가동률을 기존 80~85%에서 50%로 낮춰야 했다. 생활필수재인 휴지도 중국이 원단을 헐값에 수출해 올 상반기 중국산 수입이 전년 대비 2.6배 급증해 국내 산업이 시름하고 있다.

한때 값싼 중국산을 수입하던 세계 각국은 이제 무역장벽을 세우고 있다. 미국은 25% 관세를 검토 중이고, 멕시코도 관세를 인상했다. 한국도 현대제철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중국 철강의 반덤핑 제소를 했다.

이 와중에 정부의 중국산 시멘트 수입 검토에 국내 시멘트 업계는 우려가 크다. 시멘트도 철강과 마찬가지로 설비 중단 비용이 커 중국이 밀어내기 수출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국내 시멘트가 비싸다는 이유로 수입 간담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중국 시멘트의 보관, 유통을 위한 부지 확보 등 계획이 논의됐다.

시멘트는 한국 정부가 육성해 온 기간산업이다. 민간의 힘으로 시작하기에 설비구축 비용이 매우 크다. 석회석 광산과 30층 건물에 맞먹는 예열탑, 14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디는 쾰른, 그리고 탄소배출량을 줄일 환경 설비까지 투자 비용이 막대해 산업이 고사하면 회복이 어렵다.

김진만 공주대 그린스마트건축공학과 교수는 "기간산업재는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며 "가격을 낮추려고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은 소량이라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도 "시멘트는 대체불가의 건자재"라며 "외국에 의존해 수급이 불안정해지는 길을 가선 안된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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