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대단지 입주장 잔혹사에서 벗어날까[비즈니스 포커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유명세를 탔던 서울 강동구 소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이 ‘올림픽파크 포레온’으로 옷을 갈아입고 드디어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올림픽공원을 마주한 ‘사실상 송파구’인 입지에 1만2000여 가구 ‘메가 단지’ 규모, 시공단과 공사비 협상 난항으로 공사 중단 사태까지 겪은 곳인 만큼 이름값이 전국구 수준이다.
이에 많은 수요자들이 올림픽파크 포레온 입성을 노리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 아파트)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만큼 매매와 임차 양쪽에서 새 아파트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주를 앞두고 물량이 대거 풀리며 가격 조정을 기대하는 수요도 존재한다. 지난 주택시장 역사에서 입주를 앞두고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양권이나 조합원 매물인 입주권이 대거 급매로 풀리거나 전세가격이 하락했던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9월 들어 시중은행이 일제히 유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과 임대인 소유권 이전 시 전세대출을 중단하면서 수요가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수분양자들이 새집을 전세 내놓고 받은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와 은행 지점에선 대출 요건을 문의하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매매가 폭락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현실적으로 수분양자들이 당장 집을 팔기 어려운 데다 적체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9월 1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출 정책 운영 때문에 국민, 소비자, 은행에서 업무 담당하시는 분들을 불편하게 해 송구하다”며 사과 발언을 한 뒤 은행권은 가계대출 관리 강화 조치에 예외 조항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엘리트’ 입주 대란은 옛말
둔촌주공 입주를 앞두고 일부 수요자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뉴욕발(發) 금융위기가 국내 주택시장을 덮친 이후 몇 년간 ‘입주장 잔혹사’가 지속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진 호황에 박차를 가했던 재건축, 재개발 단지 다수가 금융위기 이후 입주 물량을 쏟아내며 부동산 투자자 다수에게 ‘흑역사’를 안겼다. 전세가격조차 떨어지며 입주 전 잔금을 감당할 수 없던 투자자들은 ‘급매’로 들고 있던 매물을 던져야 했다.
이 같은 현상은 강남권에서도 흔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아파트가 일명 ‘엘·리·트’로 불리는 송파구 잠실동 소재 ‘엘스’와 ‘리센츠’, ‘트리지움’이다. 각각 잠실주공 1~3단지를 재건축한 이들 아파트는 처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불과 1년 사이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다.
2007년 8월 3696가구 트리지움을 시작으로 2008년 7월 5563가구 리센츠, 9월 5678가구 엘스가 채 시장에 물량을 흡수하기도 전에 시장에 풀렸다. 바로 옆 신천동에도 2006년과 2008년 각각 2678가구, 6864가구인 ‘레이크 팰리스’, ‘파크리오’가 입주했다.
이들 단지 중 실거주 선호도가 높은 리센츠 전용면적 84㎡ 타입의 경우 입주 첫해 전세 시세가 2억원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기 매매는 8억~9억원 선으로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간 차이를 뜻하는 ‘갭’이 6억원 넘게 벌어졌다.
그나마 전세 시세는 금방 상승했지만 매매가격은 2014년까지도 제대로 반등하지 못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리센츠 84㎡ A타입 평균 매매시세는 입주 첫해 8억원대까지 떨어졌다가 등락을 반복했다. 2015년 하반기에 들어서야 드디어 11억원을 넘겼다.
잠실에 터진 물량 폭탄은 서울 동남권 일대 매매와 전세가격에 큰 여파를 미쳤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매매가격 지수는 엘스, 리센츠, 파크리오 입주 직후인 2008년 4분기 당시 저점을 기록한 뒤 2017년이 돼서야 본격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후분양으로 시장에 나와 고분양가 논란을 겪었던 ‘반포 자이’, ‘반포 래미안퍼스티지’는 준공 후 미분양으로 고생했다.
마포, 영등포 등 비강남권에선 2014년까지도 물량 해소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입주한 ‘마포 래미안푸르지오’, ‘영등포 아트자이’ 급매가 쏟아졌다. 영등포 아트자이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아트자이 입주 당시에 우리도 가지고 있던 입주권을 헐값에 던졌다”며 “입주장에 자금 여력이 없으면 제 아무리 노련한 투자자도 장사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 전세도 ‘줍줍’ 어려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달라졌다. 전환점을 알린 사건이 바로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입주였다. 2018년 말 입주한 헬리오시티는 무려 9510가구 규모로 자연스레 같은 송파구 내에서 발생했던 ‘엘리트’의 선례를 떠올리게 했다.
입주 1년여 전부터 때마침 박차를 가하던 정부의 규제정책도 맞물려 있었다. 2017년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한편, 2018년에는 9·13 대책을 통해 유주택자의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을 중지하는 등 부동산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헬리오시티 입주와 9·13 대책은 ‘하락론’에 불을 지폈다. 강동구 고덕동에서도 재건축 대단지들이 입주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시작하자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워낙 많은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서 해당 단지는 물론 인근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 시세가 잠시 주춤했다. 특히 헬리오시티 집주인들은 새집의 소유권 보존등기가 2년여간 늦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신용대출로 대체해야 했고 전세도 싸게 줘야 했다.
그럼에도 시세는 빠르게 회복됐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서울 시내에 신규 아파트 공급이 워낙 부족했던 데다 풍부한 시장 유동성으로 상승장이 꺾이지 않고 지속됐다. 부동산 규제로 인해 강남구 개포동이나 강동구 고덕동 등 주요 경쟁 단지의 분양권, 입주권에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가 생긴 영향도 있었다.
지난해 ‘개포 자이프레지던스’, ‘디에이치 퍼스티어아이파크’ 등 대단지가 입주했던 개포동에서도 ‘입주장 효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실수요자들이 기대했던 전세가격조차 조정되지 않았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2022년 말 해당 단지의 1순위 청약이 진행된 이후 각종 규제완화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분양권 거래는 어렵다. 분양권 전매제한은 풀렸으나 실거주 요건이 완전히 폐지되지 못하고 3년간 유예된 상태라 사실상 전매제한이 걸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거주 유예만으로 당장 실거주가 힘든 수분양자에겐 숨통이 트였고, 이에 따라 현재까지 매매 대비 전월세 매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이번 대출 규제로 전세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매매시세에 미칠 영향은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은행에 이어 신한은행, 국민은행도 1주택자 및 무주택자에 대한 예외조건을 마련하는 등 피해자 구제에 나섰다.
무엇보다 입주 예정물량이 부족하다. 부동산R114분석에 따르면 연간 입주물량은 올해 2만4659가구에 이어 내년 2만5710가구로 소폭 늘었다가 2026년 올해의 29% 수준인 7145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매거래는 가계대출 관리 강화 조치 전부터 주춤한 편이다. 이미 단기간에 급등한 실거래 가격이 헬리오시티 시세를 따라잡은 한편, 호가 역시 주거 선호도가 높은 송파구 잠실동까지 근접했기 때문이다. 전용면적 84.99㎡ 타입은 올해 1월 19억6227만원에 실거래된 뒤 하반기 들어 5억원 가까이 올랐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7월 전용면적 84㎡ 타입이 신고가를 기록한 이후 매수 문의가 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면적 전세는 7월까지 8억원 중후반에 거래되다 8월부터 9억원대로 올랐다. 그러다 9월 들어 전세 대신 반전세나 월세 매물이 급격히 늘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대표는 “‘엘리트’ 입주 당시와 지금 시장은 상황이 너무 다르다”며 “전세가격은 조정이 될 수 있지만 서울 핵심 입지에선 분양권 전매제한과 실거주 요건 문제로 매매 시장에 나올 매물이 많지 않은 데다 반포주공1단지 입주 전까지 주택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공급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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