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플 브뤼셀] '투표율 90%' 벨기에, 의무투표제 폐지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 vs "역사적 실책" 찬반 팽팽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에서 유일하게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90%에 육박하는 나라가 있다. 벨기에다.
연방의회선거, 지방선거, 지자체 선거 등 유형을 가리지 않고 투표율이 매번 90% 전후다.
'독재국가도 아닌데, 그게 가능하다고?'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의외로 비결은 간단하다.
유권자의 투표 참여가 의무다. 1893년 선거법이 개정된 이래 130여년간 유지됐다.
유권자는 무조건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 소위 '출석 확인'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위임장을 주는 대리투표나 우편 투표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 참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전에 부재 사유를 입증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불참 시 처벌도 가능하다.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40∼200유로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15년간 4회 이상 불참 시에는 일정 기간 유권자 명부에서 삭제돼 투표 권리가 아예 박탈된다는 규정도 있다.
시민권에 제한을 가하는 조처로, 이 기간에는 공직도 못 맡는다.
벨기에 전체 인구의 약 15% 정도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특성상 과거에는 이런 제재 규정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도 일부 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범칙금 집행 사례가 한 건도 없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는 등 처벌 규정은 상당 부분 사문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의무투표제 역사가 워낙 오래된 데다 혹시나 모를 처벌 가능성에 '선거=투표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가장 최근 선거인 지난 6월 벨기에 연방의회 선거와 같은 날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도 89.01%로 벨기에가 유럽연합(EU) 27개국 중 1위였다. EU 27개국 평균 투표율은 50.74% 불과했다.
벨기에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투표율이 100%는 아니니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공무원들에게는 투표 의무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며 "나도 올해 유럽의회와 연방선거 투표를 하려고 해외 휴가 일정을 하루 단축하고 귀국했다"고 전했다.
현지에 오래 거주한 교민도 "벨기에는 선거일이 한국처럼 평일 공휴일로 지정되는 게 아니라 거의 늘 일요일"이라며 "그래도 벨기에인들은 (선거일인) 일요일에 투표소 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안 가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꼼수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0대인 벨기에 국적의 지인은 "무료 환불이 되는 호텔 예약확인서를 들고 코뮌(구청)에 가서 해외 출장을 가야 한다고 허위로 부재자 신고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런 벨기에에서 조만간 1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일종의 '의무투표제 폐지 실험'이 실시된다.
내달 네덜란드어권 지역인 플랑드르 지자체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 의무가 사라진다.
2021년 플랑드르 지방의회에서 유권자의 투표 의무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당시 이런 움직임을 두고 극우 정당의 득세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유권자들 가운데 일부는 기존 제도 정치권에 대한 항의 표시 목적으로 극단주의 성향 정당에 표를 주는 성향이 있는데, 이처럼 충동적 표심을 드러낼 생각이면 아예 투표소에 가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찬반 의견은 팽팽히 맞선다.
자유주의 성향 열린자유민주당(Open VLD)의 바르트 소머르스 의원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은 의무적으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정당은 자율 투표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학계에서는 개정 추진 초기부터 "역사적 실수"라고 우려를 표명해왔다.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아 취약계층 어젠다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투표 의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극우 정당의 상승세가 꺾이리란 보장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표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인접국 네덜란드의 경우 한때 95%를 기록하기도 했던 총선 투표율은 1967년 의무투표제 폐지 이후 꾸준히 감소해 작년 조기 총선 때 77.75%를 기록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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