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 취급 받던 전선 산업의 재발견···AI 바람 타고 퀀텀 점프

임지훈 기자 2024. 9. 24.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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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광케이블부터 HVDC까지
고부가제품으로 경쟁력 극대화
[서울경제]

국내 전선 업계 ‘빅2’인 LS(006260)전선과 대한전선(001440)의 합산 매출이 인공지능(AI) 시대 전력수요 폭증에 따른 해외 매출 증가로 올해 사상 최초로 1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다. 빅2를 포함해 국내 전선 업계가 중저압에서부터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간 연구개발(R&D)을 통해 확보한 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전력 초호황기(슈퍼사이클) 파도에 제대로 올라탔다는 게 산업계 안팎의 평가다.

호재 겹친 K전선, 10조클럽 예고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S전선은 연간 기준 역대 최초로 7조 원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 LS전선은 이미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9% 늘어난 3조 3647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하반기 역시 순항 중이다. 대한전선의 상황도 유사하다. 대한전선은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한 1조 6529억 원의 매출을 올린 데 힘입어 연 매출 3조 원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빅2의 매출만 합해도 연간 매출 10조 원의 고지를 밟게 되는 셈이다.

수주잔액도 7.6조로 43%나 급증

계속 증가하는 해외 매출 비중과 수주 잔액도 사상 최고 매출 달성의 청신호를 더욱 밝히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50.1%였던 LS전선의 해외 매출 비중은 50.9%로 늘어났고 지난해 33.5%였던 대한전선의 해외 매출 비중은 올 상반기 34.3%로 상승했다. 짧게는 수개월 내 매출로 이어지는 양 사의 수주 잔액은 6월 말 기준 총 7조 627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조 3436억 원) 대비 42.7% 증가했다.

AI·전기차·전력망 교체기에 호황

K전선의 이런 역대급 호실적은 전 세계적인 데이터센터 확장 등 AI 인프라 구축, 전기차 출시 확대 등에 따른 신규 전력망 수요와 미국·유럽 등지의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공급 측면에서는 그동안 막대한 R&D 비용을 투입해 확보해온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과 중저압 케이블 및 해저 케이블 등 다양한 제품군이 주효한 결과로 분석된다.

하이테크 제품 부문에서 빅2가 선전하고 있다면 중저압 케이블 분야에서는 일진전기·대원전선 등의 중견 업체가 연이어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 붐과 30년마다 돌아오는 노후 전력망 교체 주기가 맞물렸다”며 “폭증한 수요에 맞추기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째 전선 업계가 풀 케파로 공장을 가동 중”이라고 전했다.

해저로 뻗은 LS, 땅속 파고든 대한

LS전선은 올해 7월 미국 전력 회사 LS파워그리드캘리포니아와 1000억 원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저케이블은 캘리포니아주 북부 새크라멘토강에 설치된다. 오리건주 등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송전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LS전선 관계자는 “이 계약을 계기로 미국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입지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까지 약 61억 달러를 투자해 26개의 신규 송전망과 85GW 이상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대한전선은 이달 19일 미국 초고압직류송전(HVDC)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320㎸ 전압형 HVDC 및 500㎸ 초고압교류송전(HVAC) 프로젝트의 케이블 공급자로 선정된 것이다. HVDC 케이블은 지중과 지상, 해저 어디든 설치가 가능하지만 이번에 대한전선이 공급하기로 한 HVDC 케이블은 지중으로 통한다. 대한전선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500kV HVAC 케이블 시스템은 현재 상용화된 교류 지중 케이블 중 가장 높은 전압의 전기를 나르는 케이블이다.

LS전선과 대한전선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와 30년 주기 노후 전력망 교체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LS전선은 올 7월 LS파워그리드캘리포니아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서부 지역에 첫 진출했고 대한전선 역시 이번 계약을 통해 미국 HVDC 시장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HVDC케이블 등 20년 R&D 결실

AI 비즈니스 활성화로 데이터센터가 대거 확충되고 있는 가운데 장거리 대규모 송전을 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HVDC는 대한전선과 LS전선이 약 20년 전부터 개발에 힘써온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전 세계에서 전압형 HVDC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5개국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HVDC 케이블 시장 규모가 2020년 70조 원에서 2030년 159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이 200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해저케이블을 포함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총력을 쏟아왔다”며 “20년이 지난 AI발 전력 초호황기(슈퍼사이클)를 맞아 본격적으로 그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LS전선과 대한전선은 또 해저케이블 기술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해왔다.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육지로 송전한다. LS전선은 2007년 초고압 해저케이블 개발에 성공했다. 대한전선은 부산·울산 등 국내는 물론 호주·베트남 등 해외에서 13개 해저케이블 공급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는 2022년 49억 달러에서 2029년 217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K전선을 AI발 전력 슈퍼사이클에 올라타게 만든 데는 업계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양 사의 기여가 크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 사가 기술 유출 논란과 관련해 대립각을 세우고는 있지만 두 기업 모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류 기술을 가진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K전선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양 사가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올 전선·케이블 수출 '사상 최대'

일진전기를 비롯해 대원전선·서울전선 등 중견기업들도 변전소에서 수요처까지 전기를 나르는 중저압 전선을 앞세워 미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선·케이블(HS 8544 기준) 수출액은 28억 8334만 5000달러(약 3조 8348억 원)로 전년 동기 25억 9474만 3000달러 대비 11.1% 증가했다. 역대 최대 수치다.

K전선은 여세를 몰아 제품군 다양화, 현지 공장 구축 등으로 해외시장 공략 보폭을 넓히고 있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대한전선은 HVDC 시장 공략을 위해 최근 각각 1조 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LS전선은 최근 약 1조 원이 투입될 예정인 미국 버지니아주에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을 확정했다. 구본규 LS전선 대표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력화는 15년 정도 갈 것으로 보이는 메가 트렌드로 시장 미래가 밝다”며 “미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턴키역량 바탕 글로벌 공략 강화

대한전선은 지난해 6200톤급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을 매입하며 확보한 설계에서 유지·보수에 이르는 ‘턴키’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 공략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포설선은 올 7월 취항식을 가졌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해저케이블 설계와 생산, 운송, 시공, 시험, 유지·보수 역량을 모두 갖춘 기업은 소수에 불과한 만큼 K전선이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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