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주범 플라스틱, 온실가스 연 19억톤 뿜는다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데다 저렴하고 생산하기도 쉽다. 인간이 만든 물질인 플라스틱이 탄생 100년도 안 되어 온 지구를 뒤덮게 된 이유다. 온갖 것으로 성형하기 쉽단 이유로 인간은 플라스틱에 중독됐고, 기업은 시커먼 원유를 일단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로 만들어놓고 본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자’는 구호만으로는 지구를 지켜내기 어려운 이유다. 생산-소비-폐기·재활용으로 이어진 플라스틱의 전체 생애주기를 따라가며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지난 6월 찾아간 울산 남구 에스케이(SK)지오센트릭 석유화학공장. 거대한 공장 곳곳에 삐죽삐죽 솟아 있는 각기 다른 크기의 석유 저장 및 정유 처리 탑과 굴뚝들. 그 시설 사이를 미로처럼 연결한 파이프의 끝단인 제품 출하동 안에서 마치 정미소에서 갓 찧은 쌀 같은 흰색 알갱이들이 빈 포대 속으로 쏟아진다. 플라스틱의 재료 ‘폴리머’다. 원유 가공 과정에서 어떤 촉매를 만나느냐에 따라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으로 분류되는 폴리머는 일회용 포장재부터 기계 부품 등 무엇이든 만드는 ‘만능 소재’다.
이 공장에서는 연간 60만톤(2023년 기준)의 폴리머가 생산된다. 폴리머의 원재료는 끈적하고 검은 ‘석유’다. 폴리머 생산은 공장 바로 옆,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외항에 300m 길이의 거대 유조선이 이틀에 한번꼴로 100만~200만배럴 분량의 원유를 부려놓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세계에서 실려 온 원유는 정유공장 증류탑으로 보내 끓인다. 끓는점이 낮은 순서로 성분을 분리하고, 고온에서 분해하고, 급랭, 압축, 분리정제, 합성 등의 과정을 거쳐 폴리머를 만든다. 이 과정은 미로처럼 얽힌 밀폐된 파이프라인 안에서 이뤄져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에스케이에너지 생산관리실 전길배 선임 엔지니어는 “플라스틱 생산 공정을 외부에서 볼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환경 오염이고, 유출 사고”라고 말했다. 매일 84만배럴의 원유가 가공되는데도, 공장 안에선 기름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 플라스틱 제조 기술이 ‘현대판 연금술’이라 불리는 까닭을 역설하는 듯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이 ‘연금술’을 통해 플라스틱 산업을 일궈왔다. 지난해 한국의 플라스틱(폴리머) 생산량은 1451만톤으로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4위다. 생산량의 60%(950만여톤)를 수출한다. “원유를 플라스틱으로 가공할 경우 (휘발유, 경유 등으로) 정유해서 파는 것보다 부가가치가 4배”여서 “‘산업의 쌀’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소재 산업”(김평중 석유화학협회 대외협력본부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플라스틱은 원료 추출(석유 시추)부터 생산,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에 걸쳐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플라스틱의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19억톤(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으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국가 배출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특히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가장 많이 배출된다. 세계적 환경 커뮤니케이션센터인 ‘그리드-아렌달’은 지난 2월 내놓은 ‘플라스틱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플라스틱 전체 생애주기 가운데 생산 단계에서 온실가스 85%가 배출된다고 밝혔다. 원유 정제부터 나프타 분해, 폴리머 중합 등 제조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총생산량의 75%를 2040년까지 감축해야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을 줄이지 않고서는 플라스틱이 유발하는 온실가스와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오히려 비약적으로 늘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실제 유엔환경계획(UNEP)은 최근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제1차 플라스틱 생산량이 11억톤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각국은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플라스틱 국제 협약’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러시아, 이란 등 주요 산유국과, 중국 등 석유화학산업의 비중이 큰 나라들의 반대에 부딪쳐 진도를 빼지 못한다. 이들은 생산을 줄이지 말고 폐기물 관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버틴다.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 위한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한데 회의 개최국인 한국은 정작 어중간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원칙적으로 ‘플라스틱 생산 감축’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구체적 규제 수준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이 없다. 플라스틱이 포함된 석유화학제품은 한국 주력 산업 9대 품목 가운데 5번째로 생산액이 많다. 석유화학제품 가운데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수출입 실적 비율은 50.2%(2023년, 금액 기준)다. 플라스틱 수출이 경제성장의 주요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어 정부도 생산 감축에 나서길 꺼리는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전반적인 감축보다는 일회용품 생산을 줄이겠단 태도다. 김 본부장은 “플라스틱의 60%가 (가구·자동차·가전제품 등) 내구재로 공급되는데, 경량화하고 내구성이 강화되면 오히려 환경 오염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생산은 지속하면서 재활용과 폐기물 처리에 중점을 두자’는 쪽에 방점을 찍는다. 폐플라스틱을 재료로 한 ‘재활용’ 산업이나 내열성이나 고강도 고기능성 플라스틱을 생산해, 일회용품 생산 감축으로 줄어든 이익을 대체하겠단 전략이다. 김 본부장은 “현재 폐플라스틱이 9%만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매립 또는 소각되는데, 거기서 원유를 재추출하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환경단체 등에선 플라스틱 규제가 “일회용품 규제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생산 단계에서 적극적 감축을 이뤄야 이후 단계에 악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한국을 포함해 19개국 시민 1만9천명에게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2%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구체적으론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세운 파리협약이나 자연 보호 지역을 30% 이상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운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같은 방식이 제기된다. 플라스틱 생산에 대해서도 전지구적으로 생산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각국이 이를 이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플라스틱 협약 ‘제4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4)에서 르완다와 페루는 “2040년까지 15년 동안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량을 40%로 감축하자”(40X40)는 제안(‘북극성’)을 내놨다.
다만 구체적 진전이 있으려면 “과잉 생산에서 과잉 소비로 이어지는 가속페달을 늦추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이소라 한국환경연구원 자원순환연구실장은 “이제는 주로 일회용품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퇴출·대체 정책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세’ 같은 수단을 동원한 1차 폴리머 감산 정책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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