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의 말간 얼굴이 서늘함으로 바뀌는 순간[EN:터뷰]
※ 스포일러 주의
'정해인'이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는 맑고 바르다는 것이다. 해사하게 웃는 낯의 말간 얼굴을 지닌 정해인이지만, 부당함에 반항하기도 하고('D.P.' 시리즈) 분노와 적의를 가득 품은 눈빛으로 연쇄살인마를 뒤쫓기도('커넥트') 했다. 그런 정해인이 생애 첫 악역으로 스크린에 등장, 맑은 눈 속에 광기를 담아 관객들을 마주했다.
'베테랑'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베테랑2'에서 정해인은 온라인상에서 UFC 경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할 만큼 순간적인 판단 능력과 고도의 무술 실력을 갖춘 경찰 박선우 역을 맡았다.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강력범죄수사대 서도철의 눈에 들어 막내 형사로 임시 합류하게 되는 박선우는 알 수 없는 눈빛과 행동으로 내내 긴장을 자아낸다.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속 최승효와는 정반대의 박선우를 정해인은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여기에 액션 베테랑 류승완 감독의 영화 안에서 정해인은 박선우가 되어 말 그대로 날아다닌다. 극 중 서도철의 말을 빌리자면 "싸움을 XX 잘하는" 게 박선우고, 류 감독에게 99.9점을 받은 게 정해인이다.
과연 정해인은 어떻게 박선우라는 인물이 되어 눈빛으로, 온몸으로 '베테랑2'를 누빌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해인이 만난 '박선우'
박선우는 겉보기에는 서도철 못지않은 열혈 경찰이다. 칼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을 마주하고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제압한다. 그런 그는 서도철에게 조태오를 잡는 걸 보고 경찰이 됐다고 고백한다. 이후 강력범죄수사대로 합류한 박선우의 눈은 항상 서도철을 향한다.
정해인은 박선우를 나르시시즘을 지닌 소시오패스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목적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 정해인이 본 박선우다. 이를 위해 범죄자를 면담한 프로파일러의 영상, 심리학책 등도 많이 참고했다.
"박선우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사회가 그 현상을 즐기고, 사람들이 '해치'라는 별명도 붙여주며 칭송해 주잖아요. 박선우는 그에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는 인물이에요. 따지고 보면 이미 혼란스러워진 사회에 박선우가 쓱 스며든 거죠."
박선우는 가해자들을 법이 아닌 법망의 밖에서 단죄하는 인물이다. 요즘 말로 하면 '사적 복수'다. 그런 해치를 두고 영화 속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이야기하며, 그의 행동을 '정의'라 부른다.
그러나 영화에서 박선우의 전사나 사연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박선우가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정해인은 캐릭터에 동화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는 "전사도, 사연도 없기에 나름 만들어 가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감독님은 오히려 그러면 연기하기 더 복잡해질 거라면서 상황과 신에 집중해달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정의로운 심판자처럼 가해자들을 심판하지만, 나중에는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이려고 드는 해치, 즉 박선우를 보며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해인은 "그게 감독님이 원하신 포인트였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정의롭다고 보이는 게 감독님이 원한 거였죠. 감독님께서 정의의 개념 그리고 정의는 누가 내리는 것인지에 관해 물음이 많으셨어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도 누군가의 기준인 것인 만큼, 영화를 보고 나서 다 같이 이야기해 볼 만한 주제인 거 같아요."
그렇다면 온몸으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경험한 정해인은 해치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영화 속 박선우와 달리 현실의 바른 생활 정해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유지되는 건 정해진 약속과 틀 안에서 움직이기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사적 복수는) 절대 옹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베테랑들과 함께한 '베테랑2' 현장이 정해인에게 남긴 것
류승완 감독은 제작보고회 현장에서 정해인의 액션을 두고 99.9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0.1점을 뺀 이유는 "액션이 급했다"라는 것이다. 정해인에게 이에 관해 묻자 "맞다. 내가 생각보다 잽싸더라. 그래서 카메라 감독님이 20kg 카메라를 들고 날 따라오기 쉽지 않더라"라며 웃었다.
그는 "난 액션 '촬영'이 아니라 '액션'을 생각했다. 정말 그 상황에 몰입했던 거 같다. 가짜 해치를 잡기 위해 더 많이 뛰었던 거 같다"라며 "그런데 그분(가짜 해치)이 정말 빠르다. 말도 안 되게 빨라서 못 잡는데, 그걸 쫓아가려고 오기가 생기니 더 빨리 뛰었던 거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작품에서도 액션을 해봤지만, 액션 장인의 작품에서 극강의 액션을 온몸으로 경험한 것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해인은 "액션 대가인 류 감독님과의 작품을 통해 액션의 참맛을 봤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액션을 안무에 비교했다.
"액션은 함께하는 안무라고 생각해요. 저 혼자만 연습을 많이 하고 잘한다고 해서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욕심이 과하면 안 되죠."
영화 속 가장 힘들었던 옥상 액션 신 역시 류승완 감독이 만들어 놓은 완벽한 콘티 안에서 약속대로 진행됐기에 믿고 몸을 던질 수 있었다. 정해인은 "바닥에 슬라이딩해서 주먹을 쳐야 하는 신인데,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몸을 던졌다. 다행히 몇 테이크만에 감독님이 원하는 액션이 나와서 오케이 받았다"라고 떠올렸다.
베테랑들이 모인 믿음 가득한 현장은 액션뿐 아니라 정해인이 온몸을 내던져 연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또한 정해인에게 '베테랑2'는 황정민과 호흡을 맞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은데, 황정민은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해인에게 많은 배움을 안겼다.
처음에는 후배이자 팬으로서 황정민과 함께한다는 데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엄하고 무섭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러나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황정민 선배님은 되게 섬세하고 따뜻하고, 배려심도 넘치신다. 약간 츤데레다. 츤츤거리며 다 챙겨주시고, 다 지켜보고 있고, 기다려주시고 너무 따뜻한 분"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현장에서 황정민은 정해인만 카메라로 담아내야 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 밖에 서서 같이 연기하며 정해인의 몰입을 도왔다. 정해인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자기가 카메라에 나오지 않는 장면임에도 카메라 뒤에서 그렇게 연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선배님은 모든 신마다 다 그렇게 해주셨다"라고 했다.
"정말 저한테는 너무 귀감이 됐어요. 저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 후배 연기자와 작품을 하게 된다면, 제가 선배님께 배웠던 걸 그대로 해보고 싶어요."
'천만 영화'의 후속작이자 희대의 악역 캐릭터를 탄생시킨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정해인은 그동안 보지 못한 모습으로 99.9점의 연기를 선보였다. 이제 나머지 0.1%를 채워줄 관객들과 만날 일만 남았다.
"가족끼리 봐도 좋고, 친구랑 봐도 좋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아마 할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난 이런데, 넌 어떻게 생각했어?'라며 말이죠. '베테랑2'는 그런 영화예요. 영화 보시고 행복하게 이야기 나누시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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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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