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장까지"…1기신도시 선도지구 '동의 경쟁' 치열
동의서 접수 기간, 신청 마감일까지 받기로
단지 곳곳에 동의 촉구 현수막 걸려
중동·평촌신도시도 주민 동의에 '혈안'
주민 동의, 배점 중 가장 큰 비중 차지
동의율별 차등 배점…0.01% 차이로 당락 좌우
동의율 숨기고 마감날 신청…눈치싸움도 '치열'
전문가 "투기판 변질 막기 위해선 정부 대책 필요"
"오늘도 동의서 접수 받아요. 지금 내실거에요?"
2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주요 선도지구 지정 추진 통합단지 중 가구 수가 가장 많은 양지마을(4392세대) 한 아파트 단지. 입구 근처에 놓인 입간판에 주민 동의서 접수를 지난 22일까지 마감한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입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문의하니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지정 신청 마감(27일)까지 동의서를 받을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만점 기준인 95% 채우지 못해 접수 기간을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양지마을은 지난 주말까지 94%를 웃도는 동의율을 얻었지만, 선도지구 신청 첫날인 이날까지 95%를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1%를 채우기 위해 지난 7월 설치한 동의 촉구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뒀다. 단지 내·외부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는 '1분 안에 제출한 동의서, 10년 재건축 앞당긴다.', '선도업고 튀어. 선도지구 동의서는 필수품', '선도지구 지정을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등이 적혀 있었다.
고양시 일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도 지정 동의를 호소하는 현수막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는 "동의율 확보가 재건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첫발인 만큼 주민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며 "신청 마지막 날까지 조금이라도 더 동의율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지정부터"…후발 주자도 주민동의 받기에 '사활'
상대적으로 분양가와 기존 용적률이 낮아 뒤늦게 공모에 뛰어든 단지들도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을 좌우할 주민 동의에 사활을 걸기는 마찬가지다.
중동지역의 1기 신도시 통합 재건축 대상구역은 모두 18곳으로, 이 중 선도지구 공모 대상지는 16곳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9~10개 구역에서 선도지구 신청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이며, 주민 동의율이 90%를 넘긴 곳은 3~4구역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2300여 세대인 은화마을의 김근수 선도지구추진위원장은 "사업성은 나중에 평가받더라도 우선 선도지구부터 선정되자는 신념으로 동의서를 받아 왔다"며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4개 단지 중 작은 평수 단지를 집중 공략해 90%를 넘겼다"고 설명했다.
다만 "용적률을 더 높여서 조합분양분 외에 일반분양도 늘려야 재건축 분담금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이 걱정이다"라고 우려했다.
세대 수가 적은 구역 역시 선도지구 지정에 따른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2개 단지, 1030세대 규모인 복사골건영아파트의 최종구 선도지구추진위원장은 "우리 단지는 굉장히 오래돼 지하주차장도 없는 서민아파트로 생활권이 좋지 않은 편이다"라며 "분담금 부담으로 동의서를 받는 게 쉽지 않아, 가정별로 호소문을 건네고 주민마다 매달려 90%를 돌파했다"고 말했다.
실제 해당 추진위에서 배포한 호소문에는 '본 동의서는 재건축 동의서가 아니다', '선도지구 동의서에 입주민 부담은 한푼도 발생하지 않는다', '동의서 제출하면 부동산 가치상승이 예상된다' 등 선도지구 신청 동의를 설득하기 위한 내용들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중동은 현행 평균 용적률이 220%가량으로 분당이나 평촌 등지보다 20% 안팎 높은 데다 애초 분양가도 비교적 낮아 사업성이 낮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었다.
다만 재건축 시 허용 용적률 상한선이 350% 수준으로 300% 초반대인 다른 4개 신도시 지역보다는 양호하다는 평가다. 분당만큼은 아니지만 선도지구 공모 대상지들 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게 부천시의 판단이다.
부천시 관계자는 "중동은 여느 1기 신도시보다 기반시설이 대체로 잘 갖춰진 편이다"라며 "향후 이뤄질 사업성 평가와는 별도로 선도지구 선정에 따른 혜택들을 감안해 단지들 간 선의의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접수 막판까지 동의서 받기에 집중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양 평촌신도시에서는 재건축 대상 19개 구역 전체가 선도지구 공모 대상지로 구분돼 있는데, 50% 이상은 선도지구 신청에 관심을 갖고 안양시에 구체적인 절차와 준비사항 등을 문의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안양시 관계자는 "단지별로 준비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세부 진행 상황을 취합한 게 없다"면서도 "선도지구로 지정되면 향후 재건축 등의 속도나 절차 과정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상당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0.01%가 선도지구 당락 결정…동의율 올리기에 혈안
선도지구 지정을 희망하는 1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이 동의율 올리기에 혈안이 된 이유는 동의율이 지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성남·고양·안양·군포·부천시에 따르면 선도지구는 100점 만점 정량 평가로 진행하는데, 배점이 가장 큰 평가 항목은 '주민 동의율'이다. 성남·고양·안양·군포시는 주민 동의율이 95%를 넘으면 해당 항목 만점인 60점을 준다. 부천시는 90%를 넘으면 만점 70점을 부여한다.
부천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는 최저 50%에서 최고 95%까지 동의율에 따라 10~60점을 부과한다. 즉 소수점 2자리 숫자에 따라 1점이 오갈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주 환경 개선의 시급성 △통합 정비 참여 주택 단지 수 △통합 정비 참여 가구 수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 등을 따지지만 비교적 비중이 작거나나 정량 평가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복수의 지자체 관계자는 "동의율 이외 배점 기준은 사업성을 일부 포기하거나 사업자와의 협의로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주민 동의는 외부의 도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기에 선도지구 당락을 결정하는 가장 큰 항목은 동의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일반 재개발 사업도 동의율을 90% 이상 넘기기 어렵다"라며 "95%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단지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우리 단지 동의율은? 비밀'…눈치싸움도 치열
동의율이 민감한 사안이 된 만큼 각 단지들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분당신도시 한 통합재건축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동의율을 공개하면 라이벌 단지에서 경쟁 심리를 부추겨 자기네 단지 동의율을 올리는데 이용하거나 견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신청 기간까지 언론을 포함한 어느 기관에도 동의율을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눈치싸움은 신청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당신도시 등 일부 단지가 이미 95%이상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신청을 미루고 있다. 실제 이날 오후 4시 기준 선도지구 지정을 신청한 단지는 일산신도시 내 통합단지 1곳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단지들은 마감(27일) 직전까지 동의율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군포시 관계자는 "일정이나 배점 기준 문의만 있을 뿐 신청 접수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1점이라도 더 높이려고 최대한 신청을 미뤘다가 마감 전날이나 27일에 신청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2030년 입주 목표…'투기판' 막기 위한 대책 필요
각 지자체는 신청 접수 마감 후 각자의 평가 기준과 기준 항목별 배점에 따라 11월 선도지구를 최종 선정할 방침이다.
지자체별로 지정될 선도지구 최대 물량은 분당 1만2천가구, 일산 9천가구, 평촌·중동·산본 각 6천가구 등 총 3만9천가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선도지구로 선정되면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정비가 추진된다. 지자체별로 특별정비계획 수립에 착수해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을 거쳐 2027년 착공하는 일정이다.
선도지구 지정을 비롯한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이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도지구 지정 전부터 활동한 추진위원회 지역은 벌써 집값이 올랐다"며 "정비사업은 주거환경 개선 사업인데 자칫 투기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선도지구 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사전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며 "투기적 수요를 방지할 정부의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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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준석 기자 lj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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