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세 가지 판단' [특파원 칼럼]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4. 9. 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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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4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회장인 워런 버핏이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기업을 세워 돈을 번 게 아니라 투자로 부를 축적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이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가장 현명한 구루로 꼽히는 워런 버핏이다.

미국은 지난 18일 사실상 인플레이션을 이겨냈다고 선언하고 역사적인 피봇(Pivot, 금리정책 방향전환)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후 시장은 더 혼란스럽다. 20여년 만에 가장 높던 기준금리(~5.50%)가 50bp(1bp=0.01%p) 낮아졌고 전문가들은 11월 대선 후에도 빅컷 가능성을 내다본다. 경제에 관한 각종 선행지표를 꿰찬 연방준비제도(Fed)가 당장 경기침체도 아닌데 금리를 급히 재조정하는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혼재한다.

이렇게 그 어떤 예상도 확신할 수 없을 때는 반세기 이상 시장을 극복해낸, 이른바 검증된 이를 따라나서는 게 안전하다. 더구나 최근 그의 행보는 눈에 띄는 몇 가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애플 주식을 절반이나 정리한 것이다. 기술주에 잘 투자하지 않던 버핏은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세상의 변화를 목도하고 나서야 애플에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다. 다른 이들이 한 발 늦었다고 생각하던 때였지만 그 후로도 애플은 줄곧 시장지배력을 키웠고 버핏의 투자 결과는 적어도 원금의 7배 이상이라는 수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버핏은 7년여 만에 애플을 떠나보내고 있다.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인 주식을 정리하는 이유로는 세 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성장률이 눈에 띄게 둔화됐고, 아이폰이 중국에서 팔리지 않으며, 유럽은 물론 자국인 미국에서조차 반독점 제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애플은 최근 자율주행차 사업을 포기하고, 빅테크로서 경쟁자들과의 틈바구니에서 AI(인공지능) 기술력이 뒤처지면서 혁신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버핏은 아직까지도 애플을 사랑한다고 립서비스 하지만 그의 포트폴리오 결과를 보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둘째는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 반도체 기업인 TSMC를 정리한 지난해의 선택이다. 테슬라보다 비야디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버핏은 이들이 전기차 시장을 제패할 것으로 내다보고 2008년 주당 1달러에 사서 20%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 주식들을 20배 넘는 수익을 내고는 대거 처분해 지분율이 공시 의무가 있는 5% 아래로 줄었다. 비슷한 시기 TSMC 주식은 이례적으로 매수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단기차익을 내고 모두 팔아치웠다.

버핏은 이후 이들에 대해 "지정학적 긴장이 고려사항이었다"며 "좋은 기업들이지만 자본을 투입할 더 나은 곳이 있다"고 직접 답했다. 그의 선택을 통해 반추해보면 미중 통상분쟁과 전쟁 위험성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버핏이 BYD를 판 이후 미국은 중국 전기차에 기존 네 배인 100% 관세폭탄을 안겼다.

마지막은 현금보유량을 역대 최대로 늘려가는 것이다. 버핏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지만 최근엔 이를 현금화하고 있다. 버핏의 투자지주사인 버크셔 해서웨이가 이렇게 확보한 현금은 3분기 현재 3000억 달러(약 400조원)가 넘는다.

고금리 시장에서 1조 달러를 벌었다는 미국 은행을 정리하고 새 시대를 대비하는 버핏은 시장의 불안정성에 베팅하는 걸로 보인다. 버크셔의 현금보유 비중이 지금만큼 컸을 때가 2007년 금융위기 직전이었다고 월가는 지적한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장 무너지라고 고사를 지낼 필요는 없겠지만 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넘어 주식이 전에 없이 비쌀 땐 현금을 쟁여두라고 투자 대가가 몸소 알려주는 것이다.

금리인하 시기엔 주식보다 채권이 유망하다는 것도 이 같은 맥락 안의 전략이다. 1년 이하 만기의 미국 국채인 재정증권 금리는 아직도 4% 안팎이다. 현금을 여기서 돌리다 기회가 나타나면 곧바로 낚아채는 게 지금 준비해야 할 태세라고 현자가 귀띔해주는 것 같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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