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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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움을 지닌 성곽으로 유명하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방화수류정, 중국의 공심돈을 우리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동북·서북공심돈, 산과 강, 평야를 휘감아 몰아치듯 뻗어 있는 화성의 성벽 등 하나의 성곽에서 다양한 매력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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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움을 지닌 성곽으로 유명하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방화수류정, 중국의 공심돈을 우리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동북·서북공심돈, 산과 강, 평야를 휘감아 몰아치듯 뻗어 있는 화성의 성벽 등 하나의 성곽에서 다양한 매력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다. 분명 방어에 주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건축물인데 미학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은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정조 17년 12월8일 정묘 첫 번째 기사를 살펴보면 화성 건설에 관해 왕이 특별히 하달한 지시가 눈에 띈다. “한갓 겉모양만 아름답게 꾸미고 견고하게 쌓을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참으로 옳지 않지만 겉모양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적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구절을 통해 정조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의 가치를 새삼스레 되뇌게 된다. 정조는 아름다움을 통해 적들이 기가 꺾이게 될 것이고 방어하는 사람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정조가 통치했던 18세기는 가히 조선의 르네상스라 부를 만큼 문예부흥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시기로 알려졌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회화로 이름을 날렸으며 유득공은 ‘발해고’를,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저술했다. 물론 정조 자신도 문무에 뛰어난 수재였으며 수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예술가였다. 그는 예술이 지닌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조의 대단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수원화성은 수도를 천도하기 위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가까이 하기 위해,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고 은거를 위한 용도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한다. 그러나 읍치를 지금의 수원으로 옮기고 화성을 쌓은 원인은 한 가지 요인이 아닌 시대적 상황과 요구, 정조 개인의 예술적인 욕망이 작용한 결과다. 우선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옛 읍치에 건설하며 생긴 이주민들을 지가(地價)의 3배나 쳐주는 보상금과 온갖 감면책으로 유인해 새로 건설되는 위대한 도시에 자리 잡게 했으며 전국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행궁을 지어냈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신하 다산 정약용을 총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정약용은 정조가 원하던 구상을 차질 없이 해냈다. 그는 중국의 ‘기기도설(奇器圖說)’을 참고해 고안한 거중기를 이용해 화성 건설의 공기를 대폭으로 단축시켰으며 조선에서 보기 힘든 건축자재인 벽돌을 적극 활용했다. 곳곳에 들어서 있는 치성과 옹성, 암문과 포루는 위치한 지형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문과 북문인 팔달문과 장안문은 한양 도성의 사대문보다 웅장하고 철옹성 같은 자태로 우리를 맞아준다. 정조가 완공된 수원화성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기록도 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성을 순행하며 시설을 돌아보다가 서북공심돈에 이르러 “우리 성곽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니 여러 신하들은 마음껏 구경하라”(정조 21년 1월29일 경오 두 번째 기사)라는 대목에서 그가 얼마나 가슴에 벅찼을지 짐작된다.
그는 조선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시와 글이 땅에서 샘솟는 것처럼 넘쳐 나고 독창적인 건축물과 노래와 그림으로 태평성대를 이루는 미완(未完)의 꿈을 꾸고 있었다. 정조의 꿈이 서린 수원화성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자태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광교신도시의 독창적인 건축물도 정조의 이런 말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은 조선시대,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아름다움을 추구해 만든 이 성곽은 방어의 목적을 넘어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치를 재고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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