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준 오른 필수의료... 美 같은 보상, 소송 부담 낮춰줘야”

조백건 기자 2024. 9. 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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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미래를 묻는다] 심장 스텐트 권위자 서울아산 석좌교수 박승정 인터뷰
2024년 9월 23일 서울 아산병원. 심혈관 시술 권위자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김지호 기자

“필수과 의사들이 그 일만 해서 먹고살 수 있도록 베네핏(혜택)을 줘야 한다.”

심장 스텐트(혈관 확장) 시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통하는 박승정(70)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석좌교수는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베네핏과 인센티브(보상)는 필수과 의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 의료는 미국 등을 지향하며 달려왔고, 짧은 시간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며 “하지만 미국과 같은 보상의 개념은 한국 의료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환자 생명을 다루는 필수과 의사들의 소송 부담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젊었을 땐 환자를 살릴 확률이 50%만 돼도 보호자가 뭐라 하든 시술을 했다”며 “지금은 응급 환자의 보호자 상당수가 소송 제기를 염두에 두고 응급실에서부터 의사의 말을 녹음하기 때문에 의사도 방어적 진료를 한다”고 했다. “저 역시 적극적 치료를 잘 못 한다”고도 했다.

의정 사태와 관련해 박 교수는 “의사의 경쟁력은 자기만의 콘텐츠를 갖추는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올 초 사직한 후배 선생님(전공의)들이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는 “제2, 제3의 박승정이 앞으로도 나오겠느냐”는 질문에 “그리 될 것이라고 본다”면서 “한국의 후배 의사들은 저력이 있다. 열정도 있고, 똑똑하다”고 했다.

박승정(왼쪽에서 셋째)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팀이 대동맥판막 스텐트(혈관 확장) 시술을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박승정 석좌교수의 연구실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의 심장내과 중환자실 바로 옆에 있다. 23일 오전 10시, 5평(16.5㎡) 남짓한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책과 컴퓨터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책상 위의 굴곡진 45인치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니터엔 이 병원 심혈관 스텐트(혈관 확장) 시술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모니터 옆엔 200여 권의 책들이 아기 키 높이만큼 빼곡히 쌓여 있어 그의 모습은 검은 정수리만 겨우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1979년 인턴 당시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살고 죽는 건 의사에게 달려 있지 않다’고 썼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죽음 앞에서 의사의 역할은 제한적인 것 같다. 의사는 사람이 나고 죽는 과정에서 건강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도우미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의료계 ‘문익점’으로도 불린다던데.

“1990년대 초쯤 스텐트 시술을 120번 정도 했던 캐나다 의사를 찾아가 ‘한국에서도 할 수 있게 (심혈관을 벌리는) 금속 스텐트를 2개만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걸 가방에 넣어 귀국해 1991년 처음으로 시술을 했다.”

−의료계 반발이 심했을 텐데.

“1994년 초까지 40여 건 정도 시술을 했다. 그런데 당시 흉부외과계로부터 ‘검증되지 않은 불법 시술’이라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생소한 시술이었으니까. 결국 그해 6개월 정도 스텐트 시술을 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크레이지(미친) 박’으로 불렸나.

“맞다. 1997년 미국 심장학회에 참석해 세 가닥 관상동맥 중 좌주간부(left main)가 좁아진 환자도 금속 스텐트 시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전까진 100% 외과 수술을 해온 부위였다. 그랬더니 청중석에 있던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들이 벌떡 일어나 ‘거짓말쟁이’ ‘미쳤다’고 하더라(웃음).”

박 교수는 그해 좌주간부 스텐트 시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시행했다. 하버드 의대는 2003년 박 교수를 초청해 좌주간부 스텐트 시술을 전수받았다. 이때부터 그의 별명은 ‘크레이지 박’에서 ‘메인(좌주간부의 영어 줄임말) 박’이 됐다고 한다.

−전공의 이탈로 인한 영향이 오래갈 것이라 보나.

“이미 7개월이 지났잖나. 의료는 대장간 장인 시스템과 비슷하다. 인턴은 바로 위 레지던트 1년 차에게 배우고, 1년 차는 2년 차한테 배운다. 이런 현장 교육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의정 갈등이 얼마나 갈까.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진 않다.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 감정이 좀 잦아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안타깝다.”

−무엇이 안타깝나.

“의사의 경쟁력, 파워는 자기만의 콘텐츠에서 나온다. 그런 측면에서 (사직) 전공의들이 이번 사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각 병원은 지금의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할 것이다. 병원 진료 시스템, 경영 콘셉트도 달라질 것이다. 전공의들이 돌아와 전문성을 쌓기가 점점 힘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필수 의료 수가가 낮은 편인데.

“100% 맞는 말이다. 저는 병원의 지원을 많이 받아서 수가에 그리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걸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좀 들여다보니 형편없는 수준이다. 우리 병원이 한 해 300건 이상 하는 경피적 대동맥 판막 치환술(인공 판막 삽입)도 수가가 낮더라.” 이 시술의 수가는 52만원 정도로 미국의 4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후배 의사 중에 인턴 성적 1등인데 피부과를 가더라. 최소한 1등이 내과나 외과 등 필수과로 갈 수 있을 만큼의 수가 현실화가 필요하다. 필수 진료과 의사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나. 생존의 문제인데 이들에 대한 보상 개념 자체가 없었다.”

−지방은 상황이 더 안 좋지 않나.

“우리 병원 출신들 중에서도 지방 의대에서 근무하는 교수들이 많다. 그분들은 훌륭한 임상 연구를 할 능력, 열정이 있는데도 (저수가로 진료를) 열심히 해도 병원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들으니 할 수가 없다. 저를 거기에 갖다 놔도 똑같을 것이다.”

−소송 부담이 더 늘고 있나.

“그렇다. 문화가 바뀌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응급실에 심혈관 환자가 오면 10~20분 안에 치료를 안 하면 사망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보호자 설득이 안 돼도 스텐트 시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설득을 하려 하면 보호자들이 휴대전화로 제 말을 녹음부터 한다. 혹시 모를 소송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러니 저 역시 방어 진료를 하게 되는 것 같다.”

−환자에게 불이익이 있나.

“의학적 치료엔 교과서적 치료 외에 의사 개인의 주관적 판단도 반드시 들어간다. 그런데 이 판단이 소송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니 의사가 지금 바로 시술을 하면 환자가 살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저 역시 그리 잘 못 한다.”

−한국 의료 수준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필수 의료에 대한 베네핏이 있어야 한다. 베네핏이 클수록 필수 의료의 생존 확률도 높아진다. 실력 있는 의사에 대해선 더 신나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의료에도 혜택과 보상의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한국에 제2, 제3의 박승정이 나올까.

“어렵겠지만 저는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의사들 중엔 대도시의 큰 병원에 있는 의사도 있지만 시골에 있는 의사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을 하려는 의지다. 그다음이 그 의지를 서포트해주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의사들은 저력이 있다. 열정이 있고, 똑똑하다.”

−지금까지 몇 명의 환자에게 스텐트 시술을 했나.

“우리 (심혈관 중재술) 팀에서 30년 이상, 매년 1500~2000건을 했다.”

−기억나는 환자는.

“1990년대에 스텐트 시술을 한창 할 때 당시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돼 있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스텐트 시술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거듭 거절을 했는데도, 아예 우리 병원으로 몰래 옮겨왔길래 새벽에 10분 만에 스텐트 삽입을 했다. 상대 병원에서 ‘돌팔이가 불법 시술을 했다’며 난리가 났다. 3~4일을 도망 다녔다. 그 장관은 무사히 퇴원했다.”

:박승정

심혈관 스텐트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 1991년 국내 최초로 심장 관상동맥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했다. 그는 스텐트 시술 후 심혈관이 다시 붙어 막히는 재협착 비율을 절반 밑으로 떨어뜨린 ‘약물 코팅 스텐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이 시술은 현재 전 세계적 표준 치료 기법이 됐다. 그는 2003년 이에 대한 논문을 의료계의 ‘성경’이라 불릴 정도로 압도적 영향력을 지닌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게재했다. 이 저널에 우리나라 의사의 논문이 실린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밖에 관상동맥 왼쪽 주간부(left main)에 세계 최초로 스텐트 시술을 했는데 이에 대한 논문도 NEJM에 실렸다. 박 교수는 이 저널에 총 6개의 논문을 게재했다. 국내 다른 빅5 병원의 NEJM 게재 실적은 병원당 1~3개 정도다. 197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서울아산병원이 건립된 1989년부터 이 병원에서 일하며 심장병원장 등을 지냈다.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미국심장학회지(JACC) 부편집장 등도 지냈다.

☞스텐트 삽입술

막힌 혈관을 넓혀 피의 흐름을 되돌리는 시술. 우선 협착된 혈관 안에 가는 카테터(관)를 넣어 혈관 벽을 부풀린다. 혈관 벽이 벌어지면 카테터에 달린 금속 스텐트(그물망)를 넣어 혈관이 다시 붙는 걸 막는 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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