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청소년 30%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배운다”

안준용 기자 2024. 9. 2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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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금연 정책 콘퍼런스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 조선일보 금연 정책 콘퍼런스’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철중 본지 의학전문기자, 황준현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 정금석 서울YMCA 청소년운동부 부장, 김태민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부회장, 대학생 김수성씨. /김지호 기자

“액상 전자 담배를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마치 디퓨저(방향제)를 사서 처음 뚜껑을 여는 느낌이 들 만큼 달콤했어요. 10대 청소년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이런 담배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습니다.”

서울 YMCA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의 김수성(21·이화여대 3학년)씨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 조선일보 금연 정책 콘퍼런스’에서 이 같은 금연 활동 경험을 언급했다. 지난 7개월간 청소년 흡연 실태 등을 감시한 그는 “편의점엔 액상 전자 담배들이 껌과 사탕 옆에 진열돼 있었고, 인터넷으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며 “국회의원, 대통령실에 계신 분들은 이런 현실을 과연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조선일보 주최,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진화하는 담배로부터 청소년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청소년 흡연 실태와 함께 흡연 근절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김태민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부회장(변호사)은 “지금 청소년 흡연 문제의 주범은 바로 이들이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액상형 전자 담배”라며 “해외에선 액상 담배 수입·판매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더 강력한 법적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전자 담배에는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을 가열해 수증기를 흡입하는 ‘액상형’, 담뱃잎을 쪄서 그 수증기를 흡입하는 ‘궐련형’이 있다. 대부분 샤인머스캣, 복숭아, 레몬 등 다양한 과일향·멘톨향을 첨가한 ‘가향 담배’다. 다만 궐련형 전자 담배는 담배 모양 스틱 형태인 반면 최근 나오는 액상형 전자 담배는 USB(이동식 저장 장치), 열쇠 같은 다양한 디자인으로 제작돼 담배 모양을 감추고 있다. 부모나 교사 입장에선 담배인지 알아채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의 액상형 전자 담배 사용은 급격히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궐련(일반 담배)을 통한 청소년(중1~고3)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지난해 4.2%로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액상형 전자 담배 사용률은 1.9%에서 3.1%로 늘었다.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3명 중 1명(32%)은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연에 들어선 청소년의 60.3%는 현재 주로 일반 궐련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정금석 서울YMCA 청소년운동부 부장은 “액상 전자 담배가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고 일반 담배로 넘어가는 ‘관문’이 된 것”이라고 했다. 박세훈 한국법제연구원 팀장은 “헌법에서 국민에게 부여한 ‘건강할 권리’를 청소년들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래픽=이철원

문제는 이런 액상형 전자 담배가 현행법에서 일반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우선 경고 그림이나 유해 문구 표기 관리 대상이 아니다. 담배 소비세 같은 부담금도 부과되지 않는다. 담배 사업법상 ‘연초’ 잎이 들어간 담배의 경우 온라인·비대면 판매가 금지되지만,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 담배는 ‘공산품’으로 규정돼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 황준현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특히 가향 담배가 일반화되면서 청소년 액상 전자 담배 흡연율이 오르고 있는데, WHO(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라 가향 첨가물 규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년 11월부터는 담배의 유해 성분 함유량을 검사해 공개하는 내용의 담배 유해성 관리법이 시행된다. 이승철 식품의약품안전처 담배유해성관리팀장은 “담배 제조·수입 판매 업자는 2년마다 품목별로 유해 성분 함유량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 엄격한 기준의 측정법을 마련하고,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 범위도 최대한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한 해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5만8000명인데, 담배 성분이 공개되는 것만으로 국민에게 ‘안전한 담배’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담배 성분 검사 기관은 독립적인 기관으로 지정해야 하고, 법 시행 전 담배 사업법상 ‘담배’ 정의를 모든 종류의 니코틴 포함 제품으로 개정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정혜은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도 “담배 사업법상 담배의 정의가 확대되면 담배 규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상당 부분 정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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