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복수는 No, 오직 사랑… 다시 돌아온 2000년대 순애보
“날 사랑하긴 했니?”(‘내 이름은 김삼순’) 주인공 김삼순은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묻고 화장실에 앉아 마스카라 범벅 눈물을 흘린다. 요즘 보기 힘든 2000년대 로맨스 드라마 대사. 당시 감성을 보여주는 이런 질문도 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어요?”(‘사랑 후에 오는 것들’)
불륜과 파경, ‘쿨한’ 연애 이야기가 풍년인 요즘 순수하고 진지하게 사랑을 탐구하는 2000년대식 사랑 이야기가 돌아왔다. 2005년 방영한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같은 해 출간된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다. OTT 서비스인 웨이브는 최근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 편집한 감독판 ‘내 이름은 김삼순 2024′를 내놔 화제가 됐다. 한국 작가 공지영과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쿠팡플레이 드라마로 제작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27일 공개를 앞뒀다.
◇2000년대 사랑의 낭만 재소환
거의 20년 흘러 다시 소환된 두 작품은 그동안 대중매체 속 사랑의 모습도 ‘드라마틱’하게 변했음을 실감케 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뚱뚱한 노처녀’ 설정의 여성이 현실적인 조건을 넘어 용기 있게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운명으로 여겼던 사랑이 끝난 뒤 재회한 남녀를 통해 영원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사랑이 전부 같은 낭만적인 감성의 스토리는 2000년대 콘텐츠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풀하우스’(2004)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궁’(2006) ‘커피프린스 1호점’(2007) 등 당시 로맨스 드라마들이 신드롬을 일으켰고, 대중가요 속 사랑 가사도 훨씬 절절했다.
‘낭만’보다는 ‘현실’이 가미된 최근 드라마와는 사뭇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요즘에는 순정파 로맨스 드라마가 적을 뿐만 아니라, 사랑 이야기도 배신·이혼·복수 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많다. 결혼 없이 연애만 추구하거나 계약처럼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등장인물도 많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 교수는 “시대상은 로맨스를 그리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데, 대체로 현실이 어려울수록 낭만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IMF 전후로 기획된 2000년대 초반 드라마들이 사랑의 판타지를 많이 보여주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쿨한’ 지금도 통하는 이유는
옛 감성이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 2024′는 공개 후 호평을 받고 있다. 공개 당일(6일)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기 위해 웨이브에 가입한 회원 수가 전체 콘텐츠 중 1위에 올랐다. 감독판이 나오기 전에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요약본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자신의 꿈이 확고한 삼순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시대를 앞서간 주체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윤철 감독은 “(감독판을 만들기 위해) 세 번 반복해서 보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김삼순이 다시 봐도 아주 낡은 사람은 아니라 안심했다”고 말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일본 배우 사카구치 겐타로는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연락 방법 등 지금과 다른 점은 있겠지만, 시대에 따라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석진 교수도 “MZ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년 세대는 사랑과 연인 관계에서도 쿨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그렇게 행동할 뿐 사랑은 누구나 간절하게 원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과거 작품 재소환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적절히 걷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경우 성평등, 데이트 폭력 등에 대한 높아진 인식을 반영해 ‘나쁜 남자’ 주인공의 언행이 요즘 정서에 맞게 조금씩 편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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