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보장형은 증권사, 非보장형은 은행이 수익률 앞서

김정훈 기자 2024. 9. 2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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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191조원 ‘머니 무브’… 내달 15일부터 현물 이전 시행
일러스트=김현국

다음 달 15일부터 퇴직연금 현물 이전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지금은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이전하려면, 계좌에 보유하고 있던 투자 상품을 모두 팔아 현금으로 만든 뒤 갈아타야 한다. 이를 ‘현금 이전’이라고 하면, ‘현물 이전’은 이와 달리 투자 상품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금융사를 갈아탈 수 있는 것이다.

기존 ‘현금 이전’은 투자자 입장에서 불편했다. 계좌를 옮기려 만기를 못 채우고 예금을 깨면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고, 중도 상환 수수료 부담이 생기며, 상품 정리에 시간도 걸렸다. 이 때문에 수익률이 마음에 안 들어도 퇴직연금 계좌를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현물 이전이 시작되면 이런 불편이 줄어들어, 대규모 ‘머니 무브’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에 따라 191조원에 달하는, 가입자가 운용을 책임지는 DC(확정기여)형, IRP(개인퇴직연금)형 퇴직연금의 ‘머니 무브’가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그래픽=김현국

◇191조원 시장 각축전 예고

모든 퇴직연금을 현물 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퇴직연금 3가지 유형 중 가입자가 운용 위험을 부담하는 DC형과 IRP형만 가능하다. DC형은 재직 중에 근로자가 운용을 책임지고, IRP형은 근로자가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스스로 굴리는 것 등을 위해 쓴다. 이와 달리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확정급여)형은 현물 이전 대상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DC형 적립금은 103조7184억원, IRP는 88조176억원이다. 둘을 합친 총 191조7360억원 시장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48%를 차지한다. 이 시장에서 다른 회사의 적립금을 빼앗아 오려는 은행, 증권사 등의 각축전이 벌어질 수 있다.

금융권에선 은행이 수비, 증권사가 공격 입장에 설 것으로 본다. 최종진 미래에셋증권 연금부문 본부장은 “안정성만 추구해서는 연금 수익률이 물가 상승률도 이기지 못한다는 인식은 다들 가지고 있었다”며 “그동안 귀찮고 불편해서 방치했던 투자자들의 이전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수익률 꼼꼼히 따져 봐야

일반적으로 안정성을 중시하는 은행에서 파는 원금 보장형 상품이 수익률에서 증권사를 앞서고, 자산운용 경험이 풍부한 증권사에서 취급하는 원금 비보장형 상품이 수익률 면에서 은행을 앞설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22일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공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 은행 퇴직연금 계좌의 2분기 말 기준 DC형 원금 비보장 상품 수익률 평균은 13.6%였다. 국내 증권사 중 퇴직연금 적립 규모 상위 4곳(미래에셋·현대차·한국투자·삼성)의 평균 수익률(12.8%)보다 0.8%포인트 정도 높았다. IRP도 마찬가지였다. 4대 은행 원금 비보장 상품 수익률 평균(13%)이 이 증권사 4곳 평균(12.5%)보다 높았다.

거꾸로 같은 기간 원금 보장형(DC) 상품은 4대 은행 평균(3.7%)이 증권사 4곳(4%)보다 낮았다. IRP도 증권사 4곳 평균(4%)이 은행권(3.5%)을 앞섰다.

‘원금 보장을 원하면 은행에서 들고, 원금 보장 안 돼도 괜찮으면 증권사로 가면 된다’는 등식이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원금 보장을 원하는 투자자라도 증권사로 이전할 유인이 있고, 공격적인 투자 포지션을 원하더라도 은행에 남을 유인이 있는 셈이다.

또 A 예금, B 펀드, C 채권을 담은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현물 이전하려고 할 때, 옮겨 타려는 금융사가 A 예금을 취급하지 않는다면 A 예금은 여전히 현금으로 허문 뒤 이전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나경준 하나은행 세무사는 “장기 노후 자산 확보가 퇴직연금의 목적이라면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며 “상담 서비스 접근성이나 모바일 편의성 등 서비스도 꼼꼼히 따져서 퇴직연금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현물 이전’이 되면 금융 소비자들이 금융사들의 연금 수익률에 더 신경 쓸 가능성이 크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에서 투자할 수 있는 범위를 해외 투자, 대체 투자로 확대해 소비자 선택권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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