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다음은 한미 ‘원전 동맹’이다
미국은 원전 핵심 기술·부품, 우리는 건설·운영 기술 앞서
두 나라 힘 합치면 세계 최강
이스라엘 아이언 돔도 미·이 협력으로 윈윈
군사 동맹·가치 동맹 넘어 에너지 동맹으로 신기원 열자
윤석열 대통령은 ‘팀 체코리아(Team Czech-Korea)’라고 쓰고 ‘팀 코러스(Team KORUS)’로 읽지 않을까. 19~22일 체코를 공식 방문한 윤 대통령은 한국과 체코 간 ‘팀 체코리아’ 원전(原電) 동맹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원전 지재권(知財權)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고 한미 ‘팀 코러스’ 원전 동맹을 맺는 구상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다.
필자가 국가안보실 재직 시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느껴지던 게 원전 지재권 문제였다. 2022년 5월 취임 직후 윤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생태계를 신속히 복원하겠다고 선언한 다음 웨스팅하우스사(社)가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우리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개발한 APR1400 원전이 웨스팅하우스의 초기 모델인 AP1000의 지재권을 침해했으니, 허가 없이 원전을 짓지도 수출하지도 말라고 했다. 한수원은 이러한 ‘억지’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원전 시장을 잠식해 갔다. 그간 한미 양국의 민관이 함께 노력해 지재권 문제 해결에 진전을 이뤘지만, 미해결 상태다. 따라서 한미 정부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도록 원전 동맹의 비전과 로드맵을 도출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폭발하는 에너지 수요를 해결할 비책이 원전이다. 기술·경제·안보 측면의 기대 이익을 반영한 로드맵을 바탕으로 양국 기업이 이익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미국은 원전 핵심 기술과 부품에서, 한국은 원전 건설 및 운영 기술에서 앞선다. 설계, 기술, 시공, 운영 등 종합 능력에 있어 ‘팀 코러스’를 능가할 나라는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방공 시스템 아이언 돔(Iron Dome)은 이스라엘 방산 업체인 라파엘(Rafael)사가 2006년 개발했다. 그 진가를 알아본 미국 국방부가 2010년부터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이언 돔의 기술 확충을 지원했다. 이는 이스라엘 라파엘사와 미국 레이시언(Raytheon)사 간 기술 공유와 연구·개발로 이어졌고, 마침내 2021년 미 육군이 직접 아이언 돔을 도입하였다. 아이언 돔은 이스라엘이 개발하였지만, 미국의 재정적 지원과 기술 확충을 통해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기술 공유와 공동 생산에 관한 이견이 있었지만, 양국 정부가 개입해 아이언 돔의 일부 부품을 미국 레이시언이 생산하는 기술 공유 협정을 체결하여 지재권 분쟁 발생 가능성을 차단했다. 한미 정부도 원전을 ‘기술 안보’ 문제로 보고 원전 동맹의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하면, APR1400 지재권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거다.
경제적 측면에선 한미가 범세계적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며 수주량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한미 자체의 전력 공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버지니아와 텍사스를 필두로 8주에 1,700개가 넘는 AI 데이터센터가 가동하며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심각성을 인지한 백악관은 데이터센터 개발을 지원하는 ‘범부처 인프라 TF’를 조직해 최근 활동을 시작했다. 대형 데이터센터는 평균 10~50㎿의 전력을 소비하므로, 전기 출력 1,400㎿의 APR1400은 28개에서 140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 여기에다 한미가 50~300㎿ 출력의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을 함께 개발하고 생산하면, 한미는 물론 그 이상의 에너지 수요까지 소화할 수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원전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체코에 원전을 공급하는 것은, 러시아 천연가스만 믿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난관에 봉착한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회복시키기 위한 발판이다. 한미 원전 기술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환경 안보, 즉 탄소 중립과 기후 대응도 할 수 있다.
결국, 한미 원전 동맹은 원전의 설계, 건설, 운영뿐 아니라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등 새로운 핵연료를 포함한 안정적 핵연료 공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관리까지 아우르는 ‘토털 설루션’ 연대가 되어야 한다. 체코 원전 계약이 내년 3월이므로, 한미 정부는 가급적 미 대선 전에 양국 기업 간 이익 배분이 합의되도록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좋은 결과를 내면,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군사 동맹,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을 넘어, 원전을 매개로 한 에너지 동맹으로서 동맹의 신기원을 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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