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우사인 볼트가 저녁에 세계 신기록을 세운 이유

김철중 기자 2024. 9. 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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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린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그가 2009년 독일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100m 세계신기록 9초58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때 순간 최대 속도는 시속 44km였다. 이번 파리올림픽 남자 100m 금메달 기록이 9초78이다. 거리로 치면 볼트 기록과 2m 차이가 나니, 당분간 그의 기록은 전설로 남지 싶다.

스포츠 의학계는 볼트 기록이 나온 시간대에 주목한다. 볼트의 최고 기록들은 거의 모두 늦은 오후나 저녁 시간에 나왔다. 그 시간에 근육 파워와 유연성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 시간대인가? 체온은 낮 동안 서서히 상승하다가 늦은 오후에 하루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다. 체온이 높아지면 근육의 유연성과 효율성이 증가해 순간적으로 힘을 내는 능력이 좋아진다.

그때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높아져 근력은 최대화되고, 운동신경 전도 속도도 빨라진다. 정신적인 각성도 늦은 오후와 저녁 시간대에 높아져서,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집중도와 투지도 최대에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올림픽과 같은 중요한 육상 경기 결승전은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늦은 오후나 저녁 시간대에 열린다.

근육 상태의 이 같은 변화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에 따라 24시간 주기로 변하는 ‘서카디언 리듬(circadian rhythm·생체 리듬)’과 관련 있다. 그것에 따라 사람의 능력과 몸 상태는 시간대별로 차이가 난다. 생체 리듬에 따라 언제 졸리고, 언제 깨어나고, 어떻게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는지 24시간 주기로 리듬이 정해져 있다. 그건 인류가 태양계 속에서 수백만 년을 살아온 생명 시계와 같다. 밤에 잠들 때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면, 어떻게 잠을 청할 수 있겠는가. 서카디언 리듬은 믿음이며,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깔린 세포 작동 프로그램이다.

이 리듬에 따라 밤이 가장 깊은 0시에서 3시 사이에 우리는 깊은 수면에 빠진다. 이 시간에 성장 호르몬 분비가 가장 많기에 아이들은 이 시간대에 잠에 푹 빠져 있어야, 키도 크고 성장도 빠르다. 이때 뇌혈류랑도 최고조에 이른다. 자는 동안에 뇌에 쌓인 노폐물이 제거되는데, 이 시간 때에 쾌면을 하지 못하면 치매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새벽 5시쯤에는 체온이 가장 낮은 상태가 된다. 자다가 새벽에 이불을 끌어당기는 이유다. 이른 아침에는 보온에 신경 써야 한다.

태양이 뜨고 잠에서 깨어나면, 하루를 준비하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혈압은 이 시간에 빠르게 오르고, 심혈관계 반응은 출렁인다. 아침에 심근경색증이나 뇌경색 등 응급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119 호출이 가장 많은 이유다. 아침 6시경에는 인슐린 분비가 많아져, 당뇨병 환자는 이 시간대에 저혈당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오전 10시쯤에 각성도가 고조되니, 이때 중요한 일을 처리하면 좋다. 기상 후 8시간 정도 지나면 잠시 졸음이 온다. 아침 6시에 일어났다면 오후 2~3시에는 졸린다. 교통량 대비 이 시간 때에 교통사고가 가장 잦다. 오후 2시에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 회의나 미팅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어둠이 짙어지는 늦은 저녁 시간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이 슬슬 나온다. 낮에 햇볕을 많이 쬐면 쬘수록, 멜라토닌 분비량이 많아져 밤잠을 잘 이룬다. 오후 6시경에 가장 높아진 체온은 해가 지면서 서서히 내려간다. 체온이 내려가야 졸음이 오고 잠에 빠지게 된다. 늦은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여 체온이 올라가면, 밤잠이 늦어질 수 있다. 밤 10시가 넘어서면, 에너지 저장 효율이 높아져서, 이때 뭘 먹으면 바로 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태양계 인간은 서카디언 리듬대로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활동을 하며 살아야 건강하다.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혈당과 체중 관리도 쉬워진다. 면역력이 높아지고,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인의 생활은 스포츠 선수와 같다. 최대 능력치를 내어 상황을 장악해야 한다. 현대 의학은 스포츠 의학이다. 질병 치료에서 끝나지 않고 환자들을 삶의 현장에서 선수로 뛰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에 기능 유지, 최소 최적 치료가 각광을 받는다. 기후는 변해도 태양 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 리듬에 맞춰 살아야 활력 넘치는 인생 선수로 뛴다. 사는 게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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