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49] ‘왕의 조각가’가 된 스페인 여성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9. 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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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사 홀단, 성모자상, 1680~86년경, 목조에 채색, 56.52×24.45×16.99cm,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소장.

스페인 조각가 루이사 롤단(Luisa Roldán·1652~1704)은 스페인 미술사에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여성 조각가로 알려져 있다. 기나긴 미술의 역사에서 17세기 말이 되어서야 여성 조각가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 건, 우선 르네상스 이전까지 남녀 불문하고 장인의 이름을 작품에 남기는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은 수녀원이 아닌 일반 공방에서 장인으로 활동하는 게 불가능했으니 기록에 남은 이름이 드물 수밖에 없다.

루이사 롤단은 세비야에서 유명 조각가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공방에서 일을 돕다가 조각가로 성장했다. 성인이 된 뒤 같이 일하던 아버지 제자와 결혼해 세비야 근교 카디스로 이주해 채색 목조 성상(聖像)을 제작하는 공방을 차렸다. 롤단이 실질적 장인으로 조각을 도맡았고 남편은 채색과 도금을 도왔다.

롤단은 감정이 드러나는 섬세한 입술, 부드러운 몸놀림, 성스러운 느낌을 더해주며 풍성하고 자연스레 펄럭이는 옷자락을 표현하는 데 능했다. 여기에 고운 피부색과 섬세한 장식을 얹은 롤단의 작품은 성당과 관공서로부터 주문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 1688년 롤단은 마드리드로 공방을 옮기고 왕실의 주문을 받으며 ‘왕의 조각가’라는 영예를 얻었다.

하지만 롤단 부부의 삶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일곱 자녀 중 다섯을 잃었는데, 그중 둘의 사인(死因)이 영양실조였다. 죽을 때까지 가난에 시달렸던 롤단은 장례비조차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 손으로 깎아 만든 우아한 성모와 토실토실한 팔다리에 반짝이는 핑크빛 뺨을 가진 아기 예수는 그저 조각 속의 바람이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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