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자연복원, 한국과 유럽 엇갈린 길

김기범 기자 2024. 9. 2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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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후인 2030년까지 육지와 바다 면적의 최소 20%를 복원하고, 2050년까지 복원이 필요한 모든 생태계를 복원한다’. 지난 7월13일 유럽연합(EU) 의회가 최종 통과시킨 ‘EU 자연복원법’의 핵심 내용이다.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처음으로 법적 구속력 있는 목표를 설정한 이 법안은 EU 집행위가 2020년 제시한 탄소중립 정책 패키지인 그린딜의 일부다.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EU가 내놓은 야심찬 정책이기도 하다.

EU의 자연복원법 제정 취지는 훼손된 자연을 회복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가 별개 문제가 아니며 훼손된 생태계를 그냥 두고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도 EU 자연복원법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연기반 해법에 따른 생태계 복원을 탄소중립 달성의 중요한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EU가 이처럼 생태계 복원을 통한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에 힘쓰려 하는 것과 정반대로 한국에서는 육상, 해상 생태계의 훼손을 가속화하는 묻지마 개발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제주·가덕도·새만금 신공항 등은 모두 자연을 훼손해 탄소 흡수원을 없애는 데다 장기적으로 대량의 탄소 배출을 유발함으로써 탄소중립과 생물다양성 증진에 역행하는 사업들이다.

자연복원법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생물다양성 위기·기후위기 대응과 한국의 대응이 수준과 방향성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유독 더 큰 격차가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댐과 보, 하굿둑 등 인공 장애물과 관련된 하천 정책이다.

과거 유럽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천의 자연성을 훼손하고, 수질이 오염되도록 만드는 동시에 회복탄력성을 잃게 하는 댐, 보, 둑 등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졌고, 현재도 많은 수가 남아 있다. 하지만 EU는 자연복원법에서 “2030년까지 2만5000㎞ 길이 이상의 하천을 자유로이 흐르는 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가 필요”한 인공 장애물, 즉 댐, 보, 둑 등을 확인하고 철거하도록 정했다. 철거에서 제외될 수 있는 인공 장애물은 재생에너지 발전, 내륙 항해, 용수 공급, 홍수 방지 등의 용도로 필요성이 인정된 경우에 한정했다. ‘하천의 자연적 연결성 및 범람원의 자연적 기능 복원’이라는 EU의 정책 목표에서 자연성을 회복한 하천이 기후위기·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잣대를 한국의 하천과 하구 곳곳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댐과 보, 둑에 적용할 경우 철거를 피할 수 있는 인공 장애물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홍수 방지, 용수 공급, 생물다양성 증진 중 어떤 기능도 갖고 있지 않는 4대강 16개 보 가운데 살아남을 보는 하나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존하는 댐, 보 등을 없애도 모자랄 판에 환경부가 올해 발표한 것은 4대강 보 존치와 신규 댐 후보지 발표였다. 다른 나라의 앞서가는 정책을 따라가지는 못할망정 기후위기를 가속화함과 동시에 생물다양성도 훼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증진, 탄소중립처럼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목표들조차 한국 정부에는 서류상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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