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정당법과 군사쿠데타의 잔재

기자 2024. 9. 2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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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지구당 부활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거대 양당 간의 의견 차이가 크게 없는 듯하다. 지난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났을 때도, 20년 전 폐지됐던 지구당을 부활하자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당법을 손보려면, 제대로 손봐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정치다양성을 훼손하는 군사쿠데타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미군정령 제55호로 ‘정당에 관한 규칙’을 공포했다. 이 규칙에서는 정치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3인 이상의 단체는 정당으로 등록하게 했다. 그런데 미군정은 이 규칙을 근거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일부 정당들의 등록을 취소하기도 하는 등 권한을 남용했다. 그런데도 이 규칙은 1950년대까지 존속했다.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이 해산된 것도 이 규칙에 의한 것이었다.

4·19 혁명 이후에 ‘정당에 관한 규칙’은 폐지되었고, 국회는 ‘신문 등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이 법률에서 정당의 설립은 자유에 맡겨져 있었으며, 조직이나 당원숫자에 관한 요건은 없었다. 단지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만 하면 됐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2년 12월31일 정당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는 5개 이상 시도에 조직이 있어야 하고 일정 숫자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정당을 창당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독소조항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당의 조직이나 당원 숫자를 정당의 설립요건으로 정한 정당법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정당법은 정당의 중앙당은 수도에만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주민들의 정치결사체(지역정당)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매우 중앙집권적인 정당법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사쿠데타 세력은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해 다른 국가에서는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조항들을 정당법에 넣어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복수당적 금지조항과 정당 유사명칭 사용금지 조항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든 정당법에는 복수당적 금지조항이 들어가 있었고, 이 조항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누구든지 2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조항이다. 왜 국민이 2개 이상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을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이런 경우에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복수당적 금지조항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정당연합(연합정당)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복수당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연합정당을 만들려면 기존 정당의 당원들이 탈당해서 연합정당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항은 정치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억누르는 조항이기도 하다.

한편 ‘서울의 봄’을 짓밟은 군사쿠데타 세력은 국가보위입법회의를 구성하여 1980년 11월25일 정당법을 개정했다. 이때 만든 ‘유사명칭 등 사용금지’ 조항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것은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정당이 아니면 그 명칭에 정당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하지 못한다”라는 조항이다. 이 조항 위반에 대해서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려고 지역 차원의 정치결사체를 만든 주민들이 ‘풀뿌리옥천당’ 같은 명칭을 사용했다가 기소된 사례도 있다. 이것 역시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독소조항이다. 우스갯소리로 ‘당’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처벌한다면, ‘식당’이나 ‘경로당’도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그리고 ‘당’이 아니라 ‘파티’라는 표현을 쓰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법을 희화화하는 조항이다.

의문인 것은 ‘민주화 세력’의 후신임을 표방하는 정당과 정치인조차도 이런 악법 조항들을 폐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나 국민의 참정권 보장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더 좋다는 것인가?

지금 정당법을 손보려면, 지구당 부활만 논의해서는 안 된다. 군사쿠데타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을 폐지하는 것도 함께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는 지역주민들의 정치결사체(지역정당)을 법제화하는 등 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입법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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