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딥페이크, 깊은 속임수

기자 2024. 9. 2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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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히는 사람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작고 성능이 좋은 캠코더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로 사람을 속이는 프로그램이 개발된 사실은 대체로 여성의 권리가 침해되는 사건을 통해 알려졌다. 법은 기술의 ‘악용’을 막으려 했지만 늘 한발 늦었다. 이제 누구나 손쉽게 성착취물을 만들 수 있게 된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것이 기술을 훌쩍 넘어선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동의했든 하지 않았든 스스로 찍었든 남이 찍었든, 여성의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수단이 되는, 사회가 문제다.

성관계 장면이 촬영된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여성방송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사과하며 방송계를 떠나야 했던, 20여년 전의 사건을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사과까지 강요받는 일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이미지가 협박의 수단이 되는 일은 더 흔하고 악랄해졌다. ‘네가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걸 가족에게 알리겠다’ ‘네가 찍힌 영상을 주위에 퍼뜨리겠다’는 말로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유무형의 이득을 취한다. 피해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사회라 가능해진 일이다.

정작 여성의 수치심은 인정되지 않았다.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되므로 하반신이 불법촬영됐더라도 무죄, 화장실에서 불법촬영당한 영상은 ‘화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선고유예. ‘속옷을 입은’ 것은 ‘성적 신체부위 노출’이 없어 범죄 영상 삭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유포되더라도 자신이 촬영한 것이면 삭제해주지 않았다. 피해 경험에 수치심이 뒤따른다면 그것은 나의 몸과 인격에 대한 자기 통제감이 사라지고 온전성이 훼손되기 때문이지, 그것이 성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남성의 위치에서 만들어진 ‘성적 수치심 유발’이라는 범죄 기준은 여성의 피해를 성적인 것으로 제한했다. 여성의 경험은 온전히 해석되지 못한 채 조각나고 미끄러졌다.

물론 이것은 전부가 아니다. 여성의 성적 이미지나 성적 실천을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산업이 있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정상’이고 ‘능력’인 사회에서 시장이 번창한다. 여성에게 강요된 성적 수치심은 이들의 밑천이라 이미지를 업로드하고 삭제하는 업체의 카르텔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여성을 굴복시키는 것이 수익의 원천이 될수록 ‘남자-되기’를 위한 ‘놀이 문화’가 만들어지고 플랫폼은 성착취의 새로운 장으로 제공된다. 제작을 하든 유통을 하든 소비를 하든 폭력과 놀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길러진다. 성착취에 가담하는 것은 명예가 되고 젠더폭력은 더욱 포악해진다.

제도의 뒷북치기는 기술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여성의 위치에서 문제를 정의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격차다. 딥페이크로 드러난 ‘깊은 속임수’가 바로 이것이다.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을 권력의 증거이자 남성성이라고 믿게 하는 사회, 여성을 지우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논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회, 성차별의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뒷북치는 시늉만으로 정치적 책임을 다했다고 속이는 사회. 그러나 여성은 속지 않는다.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향해, 더 강한 처벌뿐 아니라 더 정곡을 찌르는 처벌을, 더 많은 지원뿐만 아니라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는 싸움은 계속된다.

수치심은 규범을 어겼다는 자각에 따르는 사회적 감정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길들이는 규범이 견고한 사회는 그것을 위반하거나 일탈했다고 여기는 여성에게 수치심을 강요한다. 여성과 동등한 존재로 관계 맺는 규범을 확립하지 못한 사회는 가해자들이 수치심을 배우지 못하게 한다. 앞의 규범을 부수고 뒤의 규범을 세우는 일이, 수치심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길이자 속임수를 벗어날 길이다. 속임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평등은 지지 않는다는 진실은, 딥페이크로도 속일 수 없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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