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년에 써야 하는데…아직 실물도 없는 AI 교과서

신소윤 기자 2024. 9. 2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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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부터 일부 학년 영·수·정보 도입
시제품 보니 학생 수준 따라 맞춤문제 출제
일선교사들 “사교육 플랫폼과 차별성 없어”
성급한 도입에 안정성 확보 우려도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에듀테크코리아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프로토타입 시연 수업이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수의 덧셈과 뺄셈’ 지난 수업을 마치고 인공지능(AI)이 선생님에게 정리해준 피드백을 봤어요. 확실히 이해했다고 한 친구는 42%, 이해했다고 한 친구들은 19%, 잘 모르겠다고 한 친구들은 14%였네요.”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 전시장 한편에 작은 교실이 열렸다. 서울 언남초등학교 이유림 교사와 학생 10명이 20분 동안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프로토타입(시제품)을 활용한 수업을 시연했다. 과목은 4학년 2학기 수학 ‘소수의 덧셈과 뺄셈’. 두개의 대형 모니터 한쪽에는 실제 수업에서 보이는 자료들이 전자 칠판의 형태로 보였고, 나머지 한쪽에는 교사만 볼 수 있는 교사용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이유림 교사가 아이들이 보는 모니터를 터치하자 수업 자료가 떴다. 학생들 앞에 놓인 태블릿에도 같은 화면이 떴다. 학생들은 전자펜을 이용해 여백에 식을 써서 계산하고, 키보드로 정답 칸에 답을 입력했다.

기존 교과서 수업에 비해 도구가 달라지고, 문제를 누가 맞히고 틀렸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등의 차이를 보였다. 또 학생이 페이지를 잘못 찾아 들어갔다면 교사용 화면에 ‘이탈’한 학생 표시가 떠 교사가 직접 학생 화면을 조정해 수업 중인 페이지로 넘어가게 할 수 있었다. 교사용 화면에 나타난 대시보드에 누가 문제를 맞히고 틀렸는지 표시가 됐다.

실시간으로 학생 수준에 맞춘 ‘개별 맞춤’ 문제가 제공되기도 했다. 인공지능 교과서는 학생들이 그날 문제를 푸는 속도, 정답 여부 등을 판단해 수업 내용을 복습할 수 있는 맞춤 연습 문제를 냈다. 기본 문제부터 심화 문제까지 학생 수준에 따라 다른 문제가 나왔다. 수업 뒤 그날의 숙제도 수준별 맞춤 문제가 제시됐다.

이를 두고 일부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 이미 있는 유사한 도구들과 큰 차별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교육부 주관 연수에 참여한 김상규 교사(수원 남창초)는 “각 시도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기초학력 진단 보정 시스템이라는 게 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의 향상도를 측정하고, 수준에 맞는 문제 등을 제공받을 수 있는 플랫폼인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충분한 학습 효과를 보이지 않아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이 도입한 ‘하이러닝’ 또한 97% 학교가 사용한다고 조사됐지만, 복잡한 로그인 방식과 기존 사교육 플랫폼과 차별점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교사들이 저를 포함해 다수”라고 말했다.

이날 시연된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시제품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교사 연수용으로 만든 자료로, 교육부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학생별 학습 경로와 콘텐츠 추천 △에이아이 보조교사 기능 △학생 학습이력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학습 관리 방안 제공 등 핵심 기능이 모두 들어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가 많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는 내년 3월부터 초등 3·4학년과 중등 1학년, 고등 1학년을 대상으로 영어·수학·정보·국어(특수교육) 등 과목에 도입된다. 3년 뒤인 2028년에는 국어, 사회, 과학, 역사 등 전 과목에 도입될 예정이다.

도입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교사들은 아직 완성된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를 접하지 않았다. 처음 시도하는데도 실물도 공개되지 않은 데 대한 불안감과 함께 안정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아무개 교사는 학생 개별 맞춤형 학습에 대해 “(심화·응용 문제를 제공받는 등) 상위권 학생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학습 습관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하위권 학생의 경우 가정이나 학교에서 개별적인 코칭이 필요한데, 이런 기기를 이용한다고 해서 학생의 학습 의지가 올라오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상경 교사는 “에이아이보다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디지털교과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물이 아직도 나오지 않아 체험하고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6월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검정 합격 공고를 8월에 낼 계획이었으나 제작 기간 연장 등의 이유로 합격 발표를 11월 말로 연기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올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사전 검토하려던 계획도 올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로 반토막 나게 됐다. 지난 1월 교육부 주관 연수에 참여한 김아무개 교사는 “당시에 프로토타입조차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로그인 잠깐 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능들을 확인하고, 사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에이아이 디지털교과서를 경험했다”며 성급한 도입을 우려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지난 9∼10일 교육부의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관련 연수에 1회 이상 참여한 교사 17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4%는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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