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약 안 받아요” 약국도 거부… 갈 곳 잃은 폐의약품 [뉴스+]
포장 뜯어 정리 등 번거로움에
약사는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
지자체 수거 지연에 어려움도
매립·하수구에 버릴 땐 오염 심각
우체통 등 배출 인프라 확대 필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기자가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수거하느냐’고 묻자 약사는 “주민센터에 가져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날 기자가 동묘역 인근의 약국 10곳을 찾아갔지만, 8곳에서 ‘폐의약품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폐의약품을 받은 2곳 중 1곳은 ‘알약은 받지만 물약은 받지 않는다’고 했고, 조건 없이 폐의약품을 받은 곳은 나머지 1곳뿐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폐의약품을 약국이나 우체통을 통해 수거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폐의약품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폐의약품을 매립하거나 하수구에 버릴 경우 환경오염을 초래하는 만큼 수거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폐의약품이 매립되거나 하수구로 버려지면 의약 성분이 토양과 하천에 남아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2009년부터 시민들이 편리하게 폐의약품을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대한약사회·제약사 등과 협약을 맺고 약국을 통해 폐의약품을 수거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포장을 벗기지 않은 약과 영양제를 가져오고, 지자체에서 약국에 모인 폐의약품을 빠르게 수거하지 않으면서 약사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서울시약사회는 2021년 ‘지자체가 폐의약품을 수거해가지 않는다’며 폐의약품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에 전달했다.
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의 약국 중 폐의약품을 받는 곳은 전체의 51.3%에 그쳤다. 대전(99.1%)·경북(94.7%) 등 일부 지자체의 경우 약국의 수거 참여율이 높지만, 서울은 절반 수준인 59.1%였고, 경기(31.9%)·전북(32.2%) 등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의약품의 무분별한 배출은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지난해 7월 국제 학술지 ‘환경독성학&환경안전’에 따르면 광주과학기술원·창원대 연구진이 낙동·영산·금·한강 지표수를 분석한 결과 검사한 의약 성분 137개 중 120개가 검출됐고, 특히 무좀 연고 성분인 클로트리마졸과 우울증약 성분인 플루옥세틴이 유의미하게 나왔다. 클로트리마졸은 하천에 녹아들면 녹조류의 성장을 방해하고, 플루옥세틴은 담수어의 번식력을 약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는 “폐의약품 문제는 10여년 동안 방치돼 왔고, 단숨에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위험성이 높은 마약류만이라도 올바른 배출이 이뤄지도록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수거 체계를 정비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목표와 예산을 설정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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