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스토리텔러의 미래’를 물었다 [뉴스룸에서]
전정윤 | 뉴콘텐츠부국장
최근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장강명 작가의 연설 ‘에이아이(AI·인공지능) 시대, 스토리텔러의 미래’를 직관할 기회가 있었다. 이달 초 미디어오늘 주최로 열린 ‘2024 미디어의 미래 콘퍼런스’ 자리였다. 장 작가는 사고력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지른 첫번째 분야인 바둑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 역시 인공지능에 맞설 보루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그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바둑을 배우고, 추구하고, 즐기고, 존경하던 방식이 밑바닥부터 뒤바뀐 현실을 설명하면서 “문학·언론·미디어 업계 전반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전망했다.
인공지능이라면 같은 주제로 어떤 연설문을 쓸지 궁금했다. 장 작가는 “인공지능은 천상계에 있고, 진짜 대결은 인공지능 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 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인공지능 장강명’과 ‘인간 장강명’의 글이 얼마나 다른지 보고 싶었다. 지피티 포오(GPT 4o)한테 ‘너는 이제부터 장강명 작가’라고 페르소나를 부여한 뒤 같은 주제로 연설문을 주문했다. 인공지능 장강명은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수많은 플롯과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고, 인간은 그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진짜 중요한지, 인간적인 서사를 찾아내는 관리자의 역할만 남게 될지 모른다”며 매끈한 연설문 한편을 뚝딱 써냈다. 발표자료 제작 인공지능인 감마 앱한테 연설문을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만들라고 하니, 1분도 안 돼 현란한 시각자료를 동원한 10장짜리 문서를 만들어냈다.
인공지능 장강명이 쓴 연설문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꺾은 ‘신의 한 수’였던 78번째 수를 알파고의 수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고, 장 작가의 연설문에 분명히 있었던 ‘미묘한 느낌’이 없다는 한계도 보였다. 장 작가가 “창의적인 글이 뭔데? 보면 알지만, 뭐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바로 그 창의성이 인공지능 장강명의 글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도로 훈련된 인간의 몇날 며칠 노동을 몇분 몇초로 압축하는 압도적인 효율성을 고려하면, 알파고는 언론·미디어계에도 ‘이미 온 미래’인 것 같았다.
언론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 기자를 대체하면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거짓 뉴스가 판을 치고 △정치적 집단이나 거대 기술 기업이 여론을 장악하고 △개인 맞춤형 뉴스가 보편화되면서 확증 편향이 극대화되고 △사회가 분열되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신문 뉴스가 디지털 뉴스로 대체되기 전에도 비슷한 우려가 있었고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지만,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그러거나 말거나’ 디지털은 종이를 밀어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레거시 미디어의 뉴스 생산과 소비의 근간을 뒤바꿀 공산이 크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그 20년간 속보·카드뉴스·인터랙티브뉴스·챗봇뉴스·에스엔에스(SNS)·뉴스레터 등 디지털 세계의 온갖 가능성을 좇아 우왕좌왕하며 살아남았다. 레거시 미디어가 창의적이거나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서라기보다는 ‘불편하지만 보게 되는’ 비판적 문제 제기와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닐 것 같은’ 신뢰도를 앞세워, 상대적으로 괜찮은 뉴스로 선택받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한동안 더 빨리 더 많이 생산 가능한 에이아이 속보, 음성 에이아이에 기반한 맞춤형 뉴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같은 몰입형 미디어에 몰두하며 살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핵심 경쟁력은 디지털 시대에 그랬듯, 인공지능이 가져다준 효율보다는 가공할 정보의 범람 속에서 오히려 유효한 날카로운 문제 의식, 엄격한 윤리 기준과 신뢰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의 미래 콘퍼런스를 찾은 두 저명인사의 메시지도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정답을 재확인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손석희 일본 리쓰메이칸대 객원교수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저널리스트의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핵심 가치”라고 말했다. 정재승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이 뉴스를 생성하는 시대에는 트러스트(trust·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는 여전히 ‘신뢰’라고 강조했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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