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익는 지금 ‘공자의 생활난’ 김수영의 바람은 아직…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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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속의 입추, 광복절과 처서, 백로를 지나 절기는 추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벼꽃이 피고지고 벼가 맺히고 익어가는 시절입니다.
벼꽃은 막 피고 져 아직 햅쌀이 나올 때가 멀었다면, 서민들에게는 보릿고개같이 힘겨운 시기였을 듯합니다.
당시 벼꽃 필 무렵부터 식량난이 시작되었다면 줄넘기 작란(난리를 일으킴)은 하루하루 생명의 줄 넘기기의 어려움, 즉 생활난을 겪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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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욱 | 40대·대전시 유성구
더위 속의 입추, 광복절과 처서, 백로를 지나 절기는 추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벼꽃이 피고지고 벼가 맺히고 익어가는 시절입니다. 1945년, 이 무렵은 패망 직전 일본의 쌀 공출과 해방 후 미군정의 쌀값 관리 실패 등으로 쌀 부족을 겪고 있었습니다. 벼꽃은 막 피고 져 아직 햅쌀이 나올 때가 멀었다면, 서민들에게는 보릿고개같이 힘겨운 시기였을 듯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생활난에 미국의 밀가루 원조 등으로 겨우 삶의 끈을 이어갔습니다.
김수영의 시 ‘공자의 생활난’은 이런 배경에서 쓰인 작품입니다.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한학과 공자의 유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상적 학문만으로는 당시 식구와 동무의 현실적 배고픔조차 해결하기 어려웠을 터이니, 그저 생활력 없는 공자의 후학, 샌님 같은 무력감이 들었을 듯합니다.
이 시는 어려운 시어들로 인해 주로 철학적,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해왔습니다. 당시의 쌀 부족 문제와 샌님, 즉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에 나오는, 생업에 젬병인 남산골샌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좀 더 구체적, 현실적으로 아래 시의 전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였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을 구하였스나/ 그것은 작전(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인제 나는 바루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꽃이 작은 열매 위에 피는 것은 식물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벼꽃도 빈 열매껍질의 상부에 꽃이 수수하게 핍니다. 당시 벼꽃 필 무렵부터 식량난이 시작되었다면 줄넘기 작란(난리를 일으킴)은 하루하루 생명의 줄 넘기기의 어려움, 즉 생활난을 겪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발산한 형상은 벼꽃이 지고 난 후의 형상으로 열매, 쌀이 됩니다. 쌀이 부족하니 쌀을 구하기는 작전같이 어렵습니다. 그런 쌀을 구하지 못해 원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드니 이탈리아어의 마카로니처럼 생경합니다. 낯선 원조 밀가루 음식에 배탈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니, 이것을 무탈하게 잘 먹는 나는 너의 작란에 함께하지 않는 반란성을 띤 듯합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현실을, 사물과 삶의 이치를 바로 보기로 합니다. 사물과 벼와 쌀, 생활과 생명, 삶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아 너의, 식구의, 동무의 생활난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생활력 없는 나, 공자의 후학, 샌님은 죽고, 변할 것입니다. 즉 이 시를 아래와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벼꽃이 겉겨 위에 피었을 때/ 너는 하루하루 생명줄을 넘기는 작란(作亂), 생활난을 겪는다// 나는 벼꽃이 지고 맺힌 열매, 쌀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란(作亂)을 해결하는 작전(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렵다// 원조 밀가루로 만든 국수-이태리어로 마카로니를/ 내가 탈 없이 먹기 쉬운 것은 너의 작란에 대한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사물과 삶의 이치를 바로 보마/ 사물과 벼의 생리와/ 쌀, 식량의 수량과 한도와/ 생활의 우매와 생명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 샌님은 죽을 것이다
올해도 그 벼꽃은 피고지고, 벼는 여물어 가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절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시대를 엄혹한 경쟁과 불평등 속에서 각자도생하며 우리는 이 땅의 삶을 이어갑니다. 지금도 여전히 서민들은 생명의 줄을 힘겹게 넘기고 있습니다. 식구, 동무와 동포의 생활난을 바로 보고 해결하겠다는 시인의 바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을 이제 모두 함께 이루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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