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 별세
미국의 마크르스주의 문화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지난 22일(미국 시각)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
20세기 지적 거장 가운데 한 명인 제임슨은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 캘리포니아대, 예일대를 거쳐 듀크대 교수로 재직했다.
제임슨은 초기에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아 문학 이론 연구에 몰두했으나 196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이론 연구로 방향을 바꿔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사상의 토대로 삼았다.
제임슨이 학계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책은 1981년 출간한 ‘정치적 무의식’이다. 이 저작에서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사회를 떠받치는 토대로서 생산양식에 입각해 문학·예술 같은 상부구조를 이해했다.
마르크스의 고전적 정식을 따르면, 생산양식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으며, 그 생산양식이 극복되기 전까지는 모순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깊어진다. 이런 모순된 현실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그 모순에 집단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데, 이런 ‘무의식’이 드러나는 장이 바로 문학과 예술이다.
제임슨은 문학과 예술이 프로이트가 말한 ‘꿈 작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려고 시도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현실에서 봉착하는 문제를 꿈을 꾸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해결하려고 애를 쓰듯이, 문학과 예술도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제임슨의 기본 발상이었다. 그리하여 문학과 예술은 한편으로는 현실의 모순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봉쇄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유토피아적으로 이 모순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제임슨은 문학과 예술을 포함한 사회적 담론들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토대, 곧 생산양식을 논의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전 세계를 장악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확고히 발을 딛고 서서 사회 담론들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 제임슨의 생각이었다.
제임슨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1991년에 펴낸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가 꼽힌다. 이 저작에서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 퇴조와 함께 당시 지식계의 대유행이 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미술에서 앤디 워홀과 팝아트, 음악에서 존 케이지, 영화에서 장뤼크 고다르, 문학에서 누보로망처럼, 이전의 모더니즘과 다른 새로운 미학적 태도를 품은 문예 흐름을 가리킨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결정적인 차이를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경제적 토대로 스며들어 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데서 찾았다. 포스트모더니즘 문예는 건축 분야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듯이, 자본과 분리되지 않는다.
과거 모더니즘 예술은 상품화를 격렬히 거부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상품화에 대한 반감이 없고 스스로 상품이 된다. 예술이 경제와 통합된다. 그러다 보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문화는 앞 시대 문화가 지녔던 ‘상대적 자율성’을 상실하고, 자본의 지배에 저항할 ‘비판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고 제임슨은 지적했다.
더 나아가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변증법에 입각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볼 것을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의 명백한 해악과 자본주의에 잠재된 해방의 힘을 동시에 보려고 하듯이, 문학과 예술 영역에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후기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문화 양식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진보이자 파국’으로 보는 ‘변증법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중적인 눈으로 봄으로써 이 저작은 이후 한 세대 가까이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불을 지폈다.
제임슨은 이 저작들 말고도 ‘후기마르크스주의’, ‘단일한 모더니티’를 비롯해 여러 저작을 펴냈다. 2008년 인문사회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홀베르그상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미국 현대어문학협회의 공로상을, 2014년에는 트루먼 커포티상을 받았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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