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앞세운 수사 관행에… ‘성매매 여성=피해자’ 인식 오히려 줄었다 [플랫][성매매 방지법 20년]
법률 문제 상담 12만7533건
업자 대상 ‘수사 의뢰’ 줄고
‘소송 지원’ 비중은 23.1%로
성매매 강요 입증 여성에 전가
‘행위자’ 간주 별건 입건 늘어
성매매방지법으로 통칭되는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피해자보호법’이 시행 20년을 맞은 가운데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행위자’로 보고 처벌하는 관행이 오히려 과거보다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고 자립을 돕자는 게 법 제정 취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사·사법 기관이 각종 민형사 소송에 휘말린 성매매 여성을 알선업자나 브로커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전국 각지에 있던 집창촌은 사라진 대신 키스방, 토킹방 같은 변종 업소가 생기며 성매매 양태는 더욱 촘촘하고 교묘해졌는데, 처벌을 우려한 여성들이 이 거대한 구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시민단체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연대 11개 지역 상담소에서는 성매매 여성 4만8615명을 대상으로 총 46만7588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게 법률문제로 12만7533건이었다. 의료 문제(11만5316건), 선불금 등 채무 문제(8만5626건)가 뒤를 이었다.
2000년, 2002년 전북 군산 화재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성 구매자와 알선업자, 유흥업소 업주 등을 벌하고, 성매매 여성을 사회적 보호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법 시행 초기 여성들이 성매매 강요과 폭행, 협박 등 피해를 고소하면 수사·사법 기관이 알선자를 처벌하는 흐름이 이어졌고, 성매매 집결지가 줄어드는 등 큰 변화가 일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르며 성매매 산업이 근절되는 대신 이름만 바꿔 전방위적으로 확대됐고,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 행위자로 보는 시각이 강해졌다.
상담 중 법률문제를 상세히 보면 성매매방지법 시행 첫해인 2004년 성매매 여성이 알선업자 등에 대해 제기하는 ‘수사 의뢰’ 비율은 7.4%였는데, 지난해엔 0.7%로 떨어졌다. 수사기관에 상담원이 함께 가서 법적 조력하는 ‘동행 지원’ 비율 역시 2004년 17.6%에서 지난해 1.7%로 급감했다. 대신 ‘소송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7.5%에서 23.1%로 대폭 늘었다.
이는 과거와 같은 피해를 고소해도 경찰, 검찰이 여성의 성매매 행위를 별건으로 입건하는 등 민형사상 피소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성매매 여성을 ‘행위자’와 ‘피해자’로 구분해, 위계 등에 의한 강요된 성매매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2022년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는 성매매 ‘피해자’로 법률 지원을 요청한 사례 85건을 심층 분석했는데, 이중 ‘행위자’로 조사를 요구받거나 처벌받은 경우가 절반이 넘는 45건이었다. 자신이 처벌받을까 봐 고소를 포기한 사례도 27건이었다.
📌처벌 조항도, 처벌 사례도 없는 알바사이트의 ‘성매매 업소’ 광고 [플랫]
신박진영 전국연대 정책팀장은 “흔히 성매매는 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왜곡된 인식은 성 구매 남성과 성매매 여성 간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억압을 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번 발을 들여놓은 여성은 ‘선불금’ 명목으로 무려 연 140% 이상의 고리대금에 묶이게 되고, 이걸 갚지 못해 빚이 족쇄처럼 작용하는 구조에 놓인다”며 “어렵게 고소를 결심하더라도 처벌 우려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최근 11년간(2013~2023) 상담소를 통해 집계된 민형사 사건 판결문 2425건 분석을 보면 여성 개인이 ‘성 산업’이라는 거대한 구조에서 어떻게 벗어나기 어려운지 잘 드러난다. 한 여성은 가출 후 사채업자에게 선불금 300만원을 받고, 유흥주점에서 일하며 10일에 36만원씩 10회에 걸쳐 변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데다가 선불금 이자, 공동 물품 구입비, 성 구매자 선물비, 방세, 마담비 등 각종 ‘공금’을 떼이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불었다.
업자가 해외 원정 성매매까지 강요하자 결국 여성은 고소를 결심했고, 그로부터 ‘채무금 완불 확인서’를 받아냈다. 그러나 이 업자는 얼마 뒤 성매매 알선 혐의 공소시효가 지나자 다시 여성에게 채권 압류와 추심 명령을 신청했다.
선불금은 성매매처벌법에 따라 민사상 ‘불법 원인 급여’에 해당해 무효로 보는 경우가 많다. 채권 자체가 불법인데도 사채업자와 알선업자들은 성매매 여성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걸 알고 악용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가공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을 선택하고, 사회적·법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판결문을 분석한 중앙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김도현 연구자는 “업주들의 채권 서류는 여성의 삶을 통제하고 옭아매는 수단”이라며 “시간이 흘러 업소가 폐업·이전하고 증인도 사라지면 여성들이 이 채권이 성매매로 인한 것임을 입증하기 어려운데, 업주들은 이를 노려 지급 명령, 압류 신청을 하고 이행하지 못하면 다시 성매매를 강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개정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에서 ‘성매매 여성 불처벌’을 핵심으로 하는 성매매처벌법 개정안을 마련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기술 발달로 성매매 착취 구조는 더욱 교묘해지고, 알선과 강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며 “여성들은 성매매 현장에서 폭력과 감시, 스토킹, 성폭행, 불법 촬영 등 복합 피해를 경험하지만, 현행법이 이들을 온전한 피해자로 보호받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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