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악당 국가’에서 유전개발이라니

오세진 기자 2024. 9. 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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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21]

김유진씨 제공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현행법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환경권을 침해한다.’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29일 발표한 ‘기후위기 헌법소원 사건’ 심리 결과다. 203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현행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1항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이는 국가가 기후위기를 방치하고 있다며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이 2020년 3월13일 아시아 최초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햇수로 4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이 청소년 19명은 국내 첫 기후소송의 문을 연 주인공들이다. 김유진(22)씨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18살의 나이로 기후소송 청구인단에 참여해 한겨레21과 인터뷰(제1305호)한 인연이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을 본 소감은.

“오래 기다려서 그런지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론 정부가 제시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와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구체적으로 이 기본계획에 있는 2023년부터 2030년까지 부문별·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위헌성이 최종 인정되지 않아 많이 아쉽다. 비록 위헌성을 인정한 헌법재판관이 총 9명 중 6명이 아닌 5명이라 기각됐지만, 다수의 헌법재판관이 정부가 정한 부문별·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산정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점이 중요하다.”

—헌법소원을 결심했던 이유는.

“2019년 네 차례(3월, 5월, 9월, 11월) 청소년기후행동 동료들과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하고 2020년까지 국회의원과 서울시교육감, 사회부총리, 환경부 장관 등 다양한 정책결정자를 만났다. 그런데 정책결정자들에게 기대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법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소송을 통해 기후위기 속 우리 삶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헌재 결정을 앞둔 2024년 8월26일 청소년기후행동이 ‘기후 헌법소원 국민참여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각자의 삶에서 일상적인 경험이 돼가고 있다고 말한 국민 5289명이 참여했다. 이 중 10대와 20대 참여자 비중이 67%다. 우리는 비정상적 위험이 일상이 돼가는 현실을 살고 있다. 매년 여름 폭염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폭염이 한창 심할 때는 할머니랑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무서웠다. ‘사상 최고 폭염’ 또는 ‘사상 최고 폭설’이라는 말이 거의 매년 나오다보니 저 같은 미래세대는 미래가 너무 두렵다. 날씨는 자꾸 더워지고, 뚜렷했던 사계절 구분은 흐릿해지고, 기상이변은 점점 심해지는데 당장 5년 뒤, 10년 뒤는 어떨지, 내 삶이 안전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기후위기 완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중 하나이고 최악에 가까운 기후변화대응지수 점수를 받은 나라 한국에서 어떻게 유전개발을 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분해서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울었다. 하지만 이 분노로 뭐라도 해야 한다. 중요한 건 기후위기 문제를 직시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석탄발전소에 투자하지 않는 은행 선택, 비건 실천 등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부각돼왔다. 내 일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으로서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정부에 요구하는 행동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내 기후·생태 책 읽기 모임이라든지 기후위기 집회, 서명운동, 캠페인 참여 등 방법은 많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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