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갑지만 않은 한전 전기요금 동결, ‘현실화 로드맵’ 짤 때다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올해 10~12월 적용할 연료비 조정 단가를 현재와 같은 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23일 밝혔다. 불경기와 고물가 상황을 고려해 가계와 기업에 추가 부담을 안기지 않겠다는 정부 의도는 이해하지만,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가 파생시키는 여러 문제를 생각하면 반갑지만은 않다.
한전 부채는 올 6월 말 현재 203조원으로 하루 이자만 123억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전기요금 인상을 미룬 탓이다. 현재 한전은 전기를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다. 생산단가는 1차적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원료 가격에 좌우되지만, 판매가격인 전기요금은 정부가 정한다.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정부의 가격 제한으로 한국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낮은 축에 속한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호주나 일본, 영국 등의 절반 이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이중적 가격 구조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언젠가는 모두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한전의 자금난으로 ‘산업의 핏줄’인 전력망 투자도 사실상 멈췄다. 예산 부족으로 반도체 공장의 송배전망 구축이 차질을 빚고, 기존 전력망의 유지·보수까지 미뤄지며 정전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 부채는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2024~28년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보면, 올해 말 공사채 발행 잔액이 77조원에 달한다. 한전이 지급해야 하는 이자 규모도 문제지만 한전채가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채권시장이 왜곡되고 중소·중견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전 발표에 따르면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 kwh당 51.6원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오른 금액은 20원 정도다. 산업용은 지난해 11월, 가정용 요금은 지난해 5월 인상 이후 묶여 있다. 정부는 이제 더 미루지 말고 장·단기 전기요금 인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늘지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적극 설득하고, 필요한 곳에는 에너지 바우처 등 지원대책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차제에 누진제 확대·강화로 전기 과소비를 막고, 국제 유가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재생에너지 비중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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