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정의구현사제단 50주년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김정남이 두 권으로 정리한 <이 사람을 보라>는 한국 민주화운동사를 기록한 인물 열전이다. 김수환 추기경을 시작으로 49명이 소개되고, 단체는 유일하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등장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당시 천주교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후 결성됐다. 그해 9월26일 명동성당에서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을 발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이 되려고 나선 사제단의 발걸음은 권위주의 시대 고비마다 ‘암흑 속의 횃불’이었다. 폭동이라고 거짓 선전되던 5·18민주화운동 실상을 앞장서 알렸다. 1987년 5월17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이 조작됐다’는 폭로는 6월항쟁의 도화선이었다. 사제단은 2007년 10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기 위해 찾아온 김용철 변호사를 맞이했다. 이 일은 경제민주화 문제를 환기시켰다. 사제단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이 짓밟히는 곳으로도 향했다. 2003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65일간 삼보일배를 했고, 용산 참사·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를 열었다.
사제단이 23일 명동성당에서 50주년 기념 미사를 열었다. 발표된 성명에선 “우리가 ‘제1시국선언’에서 천명했던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긴급조치의 전면 무효화, 국민의 생존권·기본권 존중, 서민 대중을 위한 경제정책 확립은 짓다 만 밥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돼 버렸다”며 “다시 한번 민주의 이름으로 크게 일어설 때가 왔다”고 했다. 사제단은 지난해부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사제들이 현실 정치에 목소리 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흔들리고 후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징표다.
그런데 왜 ‘정의’일까. 사제단은 “정의는 하느님의 대표적 특성으로 영원불변의 가치”라고 했다. 인권· 민주화·평화·기후·생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은 결국 정의에 기초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빛두레(세상에 빛을 비추는 공동체)’를 향한 사제단 여정이 더 없어도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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