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대형개발 54곳 인재 허브 … 일하고 놀며 '아이디어 빅뱅'
한층에 미래사업팀만 140개
첨단기업 직원간 교류 쉽게
사무실 같은층에 맛집·술집
도심 곳곳 직주락 개발에
글로벌기업·인재 끌어들여
유명 국제학교도 적극 유치
◆ 도시개발 경쟁 ◆
내년 2월 준공을 앞둔 일본 도쿄의 '블루 프런트 시바우라' 프로젝트. 미나토구 JR하마마쓰초역 인근 대형 재개발 사업으로 사업비만 4000억엔(약 3조7500억원)에 달한다. 이곳에는 사무실과 호텔, 상업시설, 주거시설이 한꺼번에 들어서는 높이 약 230m의 쌍둥이 타워가 개발 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남측 S동 25층의 '도쿄 워케이션(TOKYO WORKation)'이다. 연면적 5000㎡에 달하는 공간이 오롯이 입주기업만을 위해 사용되는데, 핵심이 도쿄만으로 뻗어 있는 '스카이라운지' 테라스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일과를 마치면 바다를 보며 운동하거나,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첨단 기술자와 예술가, 전문직 등을 '창조 계급'으로 정의하고 이들을 도시 경쟁력으로 주목한다. 예전 산업사회는 생산과 소비의 집적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중시했고, 기업과 인재 유치 조건이 물류나 노동 같은 기능에 집중됐다. 하지만 정보기술(IT)처럼 창조성이 필요한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혁신이 더 중요하게 떠올랐다.
세계 여러 도시는 이 같은 트렌드 변화에 맞춰 공간 배치를 바꾸고 있다. 도시를 생활권으로 나누고 각각의 권역 안에 업무, 여가, 주거 공간을 집중 배치하는 방식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기존 오피스 시장 침체로 복합개발 수요는 더 커지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은 20.1%로 1979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는 10년 전 도입한 국가전략특별구역(규제철폐지역) 효과로 마루노우치를 중심으로 북쪽의 니혼바시, 동쪽의 야에스, 도라노몬·롯폰기·시부야에 이르기까지 54곳이 대형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도심 곳곳에서 진행 중인 이들 대형 개발사업은 하나같이 'WLP(일·거주·놀이)' 콘셉트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도쿄 천지개벽'이라고 하면 대개 100여 층대 초고층 건물과 23조엔으로 추정되는 건설투자 효과를 떠올리지만, 개발의 진정한 핵심은 '인재 유치와 혁신 활동'을 위한 공간 개조라는 뜻이다.
작년 모리빌딩이 재개발을 통해 완성한 도라노몬힐스의 공간 배치도 입주한 인재 간 상호작용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최근 방문한 이곳 비즈니스타워 4층 '아치(ARCH)' 오픈 스페이스에서는 다양한 세미나가 잇따라 열리고 있었다. 현재 아치에는 대기업 신규사업 개발팀 144개가 입주해 있다. 연간 약 220건의 내부 이벤트를 기획하는데, 이를 통해 입주사들이 교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응원한다. 아치 아래층 '도라노몬요코초'의 수많은 음식점과 술집도 비슷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모리빌딩이 초기에 개발한 롯폰기힐스도 7층부터 48층까지 사무실이 입주했고, 5층에 식당이 모여 있다. 그러나 한 층을 통째로 비워 대기업 신규 사업팀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바로 아래층에 식당과 다양한 휴게 공간을 넣은 것은 도라노몬힐스만의 특징이다. 복합개발 공간의 목적이 더 세분되고, 공간끼리 동선은 더 짧아지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셈이다.
아치 내부 회의실과 공동작업실, 사무실을 복잡하게 배치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사무실에 가기 위해 휴게공간과 세미나실, 회의실을 계속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러다 보니 지나가다 우연히 오픈된 세미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거꾸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다케다 신지 모리빌딩 영업추진부장은 "혁신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외부와 교류해 빌드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입구의 카페와 바를 아치 회원이 아니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열어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탓에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이던 일본 경제도 4차 산업혁명 위주로 많이 바뀌고 있다는 귀띔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스타트업 정보사이트 스피다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해외 벤처캐피털(VC)이 일본 스타트업에 출자한 금액이 225억엔(약 2072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69% 늘어난 수치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 서울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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