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당연하지 않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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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에어컨 없이 살았다.
이전에 '에어컨 없이 사는 법' 기사 쓸 때 익힌 노하우를 참조했다.
'올해는 노 에어컨'이란 대단한 결심을 했다기보단 켤 타임을 놓쳤다.
매년 여름 에어컨 켤 타임을 노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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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에어컨 없이 살았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5월1일부터 8월24일까지 평균온도 28.5도, 7월 열대야 일수 1973년 기록 경신, 가장 긴 열대야와 가장 늦게까지 계속된 열대야 등 올여름 폭염은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터다.
친구들이 방문하면 ‘예의상’ 틀긴 했다. 또 낮엔 회사 에어컨 바람 쐬었다. 그러나 주말엔 집에서 온종일 있어야 하는데, 그럭저럭 살아졌다. 이전에 ‘에어컨 없이 사는 법’ 기사 쓸 때 익힌 노하우를 참조했다. 우선 ‘햇빛 차단’이다. 아침 해가 들면 창문 닫고 반암막 커튼을 친다. 선풍기는 종일 돌아갔다. 그래도 정말 더웠다. 밤이 오면 외부 공기를 들여 방을 식혀야 하는데, 바깥 온도가 안 내려갔다. 잠들 시간이 가까워오면 온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됐다. 꿈쩍 않는 28도, 29도. 이 밤은 지나갈까. 보온용 물주머니를 샀다. 냉동실에서 얼려 보냉용으로 썼다.
‘올해는 노 에어컨’이란 대단한 결심을 했다기보단 켤 타임을 놓쳤다. 매년 여름 에어컨 켤 타임을 노리기 마련이다. 딱 켤 타임에 열린, 7월26일 시작돼 8월11일까지 이어진 파리올림픽 영향이 크다. 파리는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하며 경기장과 선수촌에 에어컨을 뺐다. 선수촌은 차가운 지하수가 바닥을 흐르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야외 경기장도 강바람으로 식혔다. 에어컨 논란이 ‘가열’되자 조직위원회는 원칙에서 한발 물러섰다. 한국 언론에서는 ‘유승민 탁구협회 회장이 신유빈 구했다… 에어컨 버스 구입’ 같은 야유가 여전히 계속됐다. 에어컨이 ‘당연하다/당연하지 않다’는 정서의 차이일까. 파리의 에어컨 보급률은 2017년 기준 17%다. 그에 비해 한국은 고온다습하다고는 하나, 2018년 조사에서 86%(국제에너지기구)를 기록해 세계 3대 에어컨 보유국(1, 2위는 미국과 일본)이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선 98%의 국민이 집에 에어컨이 있다고 답했다.
더워서 에어컨을 켜면 에어컨을 켜서 더 더워진다. 에어컨 열섬 효과는 대기 온도를 0.5~1도 올린다고 10년 전 ‘국제기후저널’에 소개됐다(2013년). 이때 시뮬레이션된 곳이 또 파리다. 한밤중에도 내려가지 않는 25도의 1도가 에어컨에서 왔으니, 1도만 낮아져도 열대야가 아닌 것이니… 열대의 밤, 에어컨 안 트는 사람의 틀고 있는 도시를 향한 원망은 불면증의 또 하나의 이유였다.
구둘래 책지성팀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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