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추억의 문방구 나들이’ 떠나볼까

한겨레 2024. 9.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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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까지 번성했던 학교 앞 문방구들
온라인쇼핑·생활용품매장 등장으로 쇠락
추억과 개성 지닌 문구점들 ‘핫플’로 주목
문구 고르는 즐거움·역사 알려주기 제격
추억의 거리에 마련된 문구사 공간 내외부 전경.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수업 시간에 필요한 공책과 필기구부터 악기를 비롯한 각종 수업 준비물, 장난감, 엄마아빠 몰래 사먹는 재미가 있는 간식까지. 학교 앞 문방구는 등하굣길에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공간이다. 1980~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학교 앞 문방구는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이 활발해지고, 저가 생활용품과 함께 문구류까지 다루는 대형 매장이 등장하고,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등의 요인이 맞물리면서 학교 앞 문방구는 빠른 속도로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2년 1만4731개였던 전국 문구 소매점은 2019년 9468개로 줄었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조사에 의하면 2024년 1월 기준 전국 문구점 수는 7800여 개로 더 감소했다. 그나마 무인화로 운영되는 새로운 형식의 문방구가 등장하고 있지만, 급히 필요한 문구류를 구입할 뿐 옛날처럼 아이들의 쉼터 같은 역할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서도 오히려 독특한 정체성이나 역사를 가지고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문방구 및 문구 관련 공간들도 있다. 취향에 맞는 문구류를 찾고 수집하는 이른바 ‘문구 덕후’가 늘면서, 뚜렷한 개성을 지닌 문구 전문점은 핫플레이스로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아이의 학용품을 구입하는 것에 익숙하다면, 아이와 엄마아빠가 함께 직접 문구 공간을 방문해보면 어떨까. 직접 다양한 문구류를 구경하고 고르면서 즐거운 경험을 하는 동시에, 아이는 직접 고른 물건에 대한 애착을 더 크게 가지고 학교 생활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문구아트박물관을 관람하는 아이들 모습. 알파 제공

■ 알파 문구아트박물관

서울 남대문시장 일대는 과거 문구 산업의 부흥기를 이끌던 지역이다. 이러한 남대문 시장에는 초대형 연필조형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알파 본점이 있다. 1971년 6평짜리 작은 문방구로 시작해 국내 최대 문구 기업으로 성장한 알파의 본점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건물에 총집합한 문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지하 1층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제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퍼즐, 보드게임, 프라모델 등 재미있는 놀잇감도 가득하다. 1층에는 다양한 펜 종류가 구비되어 있으며, 2층은 각종 학용품과 문구류가, 3층은 미술도구 및 유아교재가, 4층은 각종 사무용품과 생활용품들이 마련된 공간이다.

다양한 문구류를 구경한 후 5층으로 올라가면, 알파가 문구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개관한 문구 박물관인 문구아트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문구아트박물관은 문구산업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대한민국 문구업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이동재 알파 회장이 지난 2018년 문을 열었다. 이후 7년째 무료로 개방해 어린이를 비롯한 다양한 관람객에게 한국 문구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 서예용품부터 대중과 마니아층에게 사랑받는 각종 필기구, 30여 개 문구 브랜드 제품, 조선시대 주판과 1800년대 후반 미국 타자기, 1900년대 초중반 기계식 계산기, 여러 분야 작가들이 사용하던 기증품 등 1천여 점의 전시품을 둘러보면서 아이는 몰랐던 문구의 역사를, 부모는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개인 관람은 자유롭게 가능하며 예약을 통해 단체 관람을 하면 박물관 및 소장품 소개를 듣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 시간은 평일 10~18시, 토·일 및 공휴일 10~17시다.

■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서울 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문구완구 도소매 점포들이 모인 창신동 문구완구거리가 나타난다.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는 1960년대 동대문역 앞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처음에는 문구류 위주로 형성되었지만, 이후 업종을 확장한 점포가 늘어나며 국내 최대 문구완구 전문 시장으로 거듭났다.

문구 판매가 온라인화되면서 침체를 피해 가지 못한 가운데서도 다양한 문구와 완구류가 집합한 거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골목을 따라 걸으면서 만나는 문구완구 전문 상점들에는 공책과 가방, 실내화 등의 학용품부터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장난감, 체육용품, 파티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아이들에게는 생소할 문구완구 전문 상권을 구경하면서 가족이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기에 제격이다.

다양한 연필을 만날 수 있는 연필가게 흑심의 공간 풍경. 연필가게흑심 제공
다양한 연필을 만날 수 있는 연필가게 흑심의 공간 풍경. 연필가게흑심 제공

■ 연필가게 흑심

쓰고 지우기 용이한 연필은, 조금은 불편하고 느리지만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매력적인 문구 제품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흑심은 연필의 숨은 가치와 매력에 집중한 연필 전문 문구점이다.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학용품 위주가 아닌,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빈티지 연필들이 구비되어 있다.

문구점이라고 했을 때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갈하게 꾸려진 공간에서 연필이라는 도구를 섬세하게 만나고 탐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에 좋다. 심의 굵기부터 강도, 촉감, 진하기 등 특성이 다른 연필을 직접 사용해보면서 부모와 아이가 각자에게 맞는 연필을 함께 골라볼 수도 있다. 아이의 연령이나 취향, 용도에 따라 적합한 특징을 지닌 연필을 추천받아봐도 좋다. 위치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226-34 3층.

■ 포인트오브뷰

문구류에 유독 관심이 많은 10대 자녀와 함께라면 서울 성동구 성수동으로 문구 투어를 떠나봐도 좋다. 트렌디한 편집숍이 즐비한 성수동에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문구 제품을 탐닉하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상점이 다양하다. 성수동 문구 투어가 하나의 나들이 코스일 정도.

그중 포인트오브뷰는 빈티지한 종이부터 문진, 노트, 클립, 펜, 스탬프, 엽서 등 일상에 영감을 주는 감각적인 문구 제품들을 엄선해 판매하는 공간이다. 문구를 창작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일상을 더 풍성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문구 제품들을 골라 선보인다. 마치 문구 전시장에 온 듯한 공간 인테리어와 매장 곳곳을 장식하는 오브제 작품들이 재미를 더하는 곳이다. 포인트오브뷰의 운영 시간은 낮 12~20시다(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무).

이외에도 문구·사무용품 기업 모나미 제품을 한자리에서 구경하고 DIY 만년필 잉크도 만들어 볼 수 있는 모나미스토어 성수점(서울 성동구 아차산로 104 1층), 알록달록 귀여운 디자인의 문구 제품이 즐비한 해피어마트(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3 1층), 특색 있는 문구류 및 디자인 제품이 가득한 오브젝트 성수점(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36 2층) 등 다양한 문구 전문 공간을 함께 돌아볼 수 있다.

추억의 거리에 마련된 문구사 공간 내외부 전경.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추억의 거리에 마련된 문구사 공간 내외부 전경.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가을 날씨를 만끽하면서 문방구를 비롯한 과거 시대의 흔적을 만나는 나들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립민속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인 추억의 거리는 학교, 음악다방, 만화방, 사진관, 대중목욕탕, 다방, 문방구 등의 공간을 통해 1970년대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코로나19로 운영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2022년 7월 재개장했다. 입구의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풍경의 거리가 펼쳐진다. 학교를 지나 하굣길을 따라가다보면 학교 앞에서 빠질 수 없는 문방구와 슈퍼, 만화방, 분식집 등이 나타난다.

그중 현대문구와 근대화슈퍼에서는 인기를 끌었던 완구와 학용품, 생활용품들의 전시 제품을 밖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실제로 운영하는 문방구는 아니지만, 무인 문방구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과거 문방구의 모습을 보여주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좋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운영 시간은 11~2월 기준 9~17시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옛 북부법조단지 부지에 조성된 서울생활사박물관은 해방 이후 서울 시민들의 생활사를 다양하게 꾸려진 전시 공간을 통해 만나고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과 영상 자료로 만나는 1960~80년대 서울 모습부터 서울 사람들의 세대별 결혼 이야기, 서울 사람들의 출산과 육아 문화 등을 상설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기획전이 열리면 어린이 및 가족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연계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그중 2층 생활사전시실은 ‘서울살이’를 주제로 서울토박이와 한국전쟁 직후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의 생활상을 다양한 공간 재현과 물건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레코드판과 그 시절 영화 포스터, 옛 사진관에 걸린 빛바랜 가족 사진 등 아이들에게는 생소할 추억의 물건이 즐비하다. 전시실에서는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성문구사’를 재현한 공간도 만날 수 있다. 보성문구사가 폐업할 당시 기증받은 간판을 그대로 활용한 보성문구사 전시 공간에는 로보트 태권V, 종이인형, 딱지 등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할 놀잇감부터 그 당시 사용하던 학용품, 교련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옛 놀잇감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 직접 해보면서 새로운 놀이 시간을 가져봐도 좋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찾았다면 1층 어린이체험실 옴팡 놀이터도 함께 이용해보기를 추천한다. 어린이들이 일상생활을 학습하고 즐기는 감성 체험관인 이곳에는 대형 정글짐, 미끄럼틀 등의 놀이 시설물부터 각종 장난감,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 등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옴팡 놀이터는 정기 휴무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시, 13시, 16시 각 회당 20명씩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서울생활사 박물관의 관람 시간은 9~18시(월요일 휴무)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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