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최윤범 모두 '벼랑 끝 전술'…고려아연 경영권 전쟁 누가 웃을까
최 회장, MBK 공개매수 막기 위해선 경영권 내려놔야 할지도
대기업 오너들 적으로 돌린 MBK도 배수의 진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맞붙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배수의 진을 쳤다. 한국 대기업을 상대로 두 번째 적대적 인수합병(M&A) 나선 MBK파트너스는 이번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 평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만큼 가용 자금을 모두 투입해서라도 공개매수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 회장도 여론전 우위를 앞세워 방어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백기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경영권도 일부 담보로 내놓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절박한 MBK "두 번의 실패는 없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한국투자증권을 대항 공개매수 주관사로 인수금융과 브릿지론을 제공받고 글로벌 기업 혹은 PEF들이 에쿼티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용을 짜고 있다. 현재 베인캐피탈 크레딧펀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베인캐피탈은 이르면 이번주 중 투심위를 거쳐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 측은 MBK측의 공개매수가 상향 여부 등을 살핀 후 본격적인 대항 공개매수 실행에 돌입할 계획이다.
MBK 연합은 최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을 뿐더러 자칫 우군들이 참여를 결정하면 자본시장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연일 맹공을 이어가고 있다. 스미토모를 비롯한 고려아연과 밸류체인상 엮여있는 기업들이 지분을 비싼 가격으로 사주는 대가로 향후 고려아연과의 거래에서 높은 마진을 받으려 한다면 고려아연의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가까운 딜이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MBK가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건 이번 공개매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를 상대로 처음으로 적대적 M&A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번에도 성과를 못내면 시장에서도 평판을 잃게 된다. 두 번의 적대적 M&A 시도로 한국 대기업 오너들을 적으로 돌렸다는 점도 문제다. 앞으로 대기업 소수지분 투자나 카브아웃 딜을 따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과 노동조합,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많은 질타도 받았다. 게다가 펀드 펀딩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MBK는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 이슈를 공격하는 운용 전략을 성공시켜 글로벌 출자자(LP)의 펀딩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입장에선 많은 걸 잃을 각오를 하고 시작한 딜"이라며 "회사의 명운을 걸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MBK파트너스는 공식적으로는 "공개매수가 인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공개매수가 인상 여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매수 기한 변경 없이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26일까지 추가 인상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최 회장 측의 대항 공개매수 의지를 완전히 꺾기 위한 선제적인 가격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조원 규모의 바이아웃펀드를 동원했지만 MBK파트너스 입장에서도 공개매수가 상향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향후 펀드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개매수 성공 여부도, 정확한 규모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LP들에게 캐피탈 콜을 요청하는 것도 쉽지 않다.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 사무취급자인 NH투자증권에 브릿지론을 더 빌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NH투자증권 내부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 이슈가 되면서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다 담보로 잡은 고려아연 주식이 경영권 분쟁이 끝난 뒤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건전성 지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기고도 지는 방어' 우려도
최 회장은 국내외 PEF와 고려아연의 협력업체, 최 회장과 인연이 깊은 대기업 오너 등을 만나며 우군을 모으고 있다. 최종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지분을 매집해줄 우군을 확보하는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으로 대응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우군으로 참여한 투자자들의 회수 방안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숙제다. MBK 연합이 제시한 공개매수가인 66만원은 물론 현재 주가인 70만원보다 훌쩍 높은 가격에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야 하는데 회수 전략이 없다면 자금조달도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회수를 돕기 위해선 최 회장도 영풍처럼 경영권을 내려놓고 지분을 함께 팔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는 방법뿐이다. 유력한 우군 후보로 꼽히는 베인캐피탈엔 향후 고려아연의 배당을 최대치로 늘려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방안 등으로 협상하고 있지만 이런 조건만으론 투자를 확정짓기 쉽지 않다는 게 IB 전문가들 설명이다. 결국 재무적투자자(FI)가 백기사로 들어가 일정 기간 최 회장의 파트너로 경영권을 보장해주더라도 FI가 행사하는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최 회장이 받아주지 못하면 최 회장의 지분까지 FI 주도로 매각하는 방식이 유일한 해법이다.
최 회장 입장에선 MBK 연합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고, 일정 기간 경영권도 보장받고, 나중에 다시 지분을 찾아올 수도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최 회장이 최소 2조원에 달하는 풋옵션 대금을 기간 내에 마련하기 어려운 만큼 결국 경영권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 최 회장에게는 '이기고도 지는 게임'이 될 우려가 있다.
베인캐피탈 크레딧펀드는 외견상으론 경영권 투자를 목적으로한 '바이아웃' 펀드와 다른 전략을 편다. 글로벌 시장에서 '떼이지 않는 투자'를 가장 잘 설계하는 곳으로도 꼽힌다. IB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접촉한 글로벌 PEF에서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하려면 사실상 경영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단시간에 마련할 방법은 경영권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은 1.63% 내린 72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69만4000원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MBK 연합이 지난 13일 공개매수 계획을 밝힌 뒤 주가가 하락세로 전환한 건 처음이다. 시장의 과도한 기대감이 수그러들고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MBK 연합이 현시점에서는 공개매수가 상향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영향도 있다. 최 회장의 대항 공개매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주가가 더 이상 오르지 않은 요인으로 작용했다. 3거래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던 영풍정밀은 이날 4.14% 오른 2만1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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