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분리막 손상땐 열폭주 … 폭발력 수류탄의 75%
최근 전기차 배터리 폭주로 인한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주차를 막거나 충전을 금지하는 등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공포로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할 정도다. 전기차 화재의 과학적 원인과 예방법, 화재 시 대처법 등을 올바로 숙지하면 전기차에 대한 막연하고 지나친 공포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전기차 화재를 이해하려면 우선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구조와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전기차에는 보통 '리튬이온배터리'라는 고성능 배터리를 쓴다. 이는 우리가 자주 쓰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와 같은 종류다.
리튬이온배터리의 구조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전해액), 분리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해질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이온을 이동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맞닿지 않도록 분리해 화학적 충돌을 막아 준다.
핵심은 분리막이다. 분리막이 손상돼 양극이 직접 연결되면 온도가 높아지고 전해액이 끓게 된다. 전해액이 끓으면서 가스를 방출하고 배터리를 팽창하게 해 결국 폭발에 이르게 된다.
분리막이 손상되는 원인은 크게 △제조 결함 △과충전·방전 △외부 충격 등으로 구분된다. 먼저 제조 결함은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혼입된 금속 등 이물질이 사용 중 음극에 이른 뒤 돌기 형태로 자라면서 분리막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오기용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분리막이 사라지면서 배터리 내부에서 작은 발열이 일어나고 내부 온도가 계속 오르게 된다"며 "일단 연쇄 반응이 시작되면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과충전은 배터리의 원래 설계 용량을 넘어서 계속 충전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충전 시 상당 수준의 발열이 일어나면서 배터리 내부에 가연성 가스를 발생시키고 전해질의 변화와 분리막 손상을 일으킨다.
물론 전기차 배터리에는 과충전 방지 시스템(BMS) 장치가 포함돼 있지만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과충전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자동차 및 배터리 제조사들이 특정 모델 전기차에서 잇달아 화재가 발생한 뒤 임시방편으로 충전량 제한 등 조치를 취하는 것도 바로 과충전을 막기 위함이다.
과충전 못지않게 과방전(제때 충전하지 않아 배터리 용량이 완전히 바닥나는 것)도 위험하다. 과방전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전자가 공급되면 극판이 녹고 과충전과 마찬가지로 화학적 반응에 의한 발열이 일어난다.
외부 충격의 경우 즉각 발화에 이르지 않더라도 분리막에 발생한 손상이 한 발짝 늦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전기차 운전자들이라면 추돌 사고 후 반드시 배터리 안전 점검을 받아야 한다.
전기차 화재가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것은 리튬이온배터리의 '열 폭주 현상'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겹겹이 쌓인 배터리 셀(Battery cell)이 배터리 모듈(Battery module)을 구성하고, 다시 이 모듈들이 쌓여 배터리 팩(Battery pack)이 되는 구조다.
이처럼 겹벽 형태인 배터리 구조는 하나의 셀이 폭발하면 다른 인접한 셀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도칠훈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박사는 "열 폭주 에너지를 비교했을 때 다이너마이트가 ㎏당 2083Wh, 수류탄이 ㎏당 385Wh인데 리튬이온전지는 ㎏당 290Wh로 수류탄 폭발력의 75.3% 수준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화재는 주변에도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리튬이온배터리 특성상 높은 압력에 의해 가연성 가스 분출과 함께 화염이 수평으로 전파되는 특성이 있고, 가연성 가스로 인해 폭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전기차 화재는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해 이를 100%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안타까운 사실은 전기차 운전자가 화재를 예방하고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 폭주 발생을 최소화할 일차적 책임은 완성차·배터리 제조사에 있다. 완성차 업체는 방열 소재 적용, 설계 고도화를 통해 차량 내 화재 확산을 최소화하고 탑승자가 대피할 시간을 충분히 벌어줘야 한다.
배터리 제조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현재 배터리는 주행거리 연장과 같은 성능 개선이 곧바로 화재 위험성 상승과 이어지는 한계가 있다. 주행거리를 높이려면 배터리 양극재 내 니켈 비중을 높이거나 외부 보호재, 모듈 등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모두 화학적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충격에 약해진다는 단점이 따라온다.
따라서 에너지 밀도와 화재 내성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앞으로 배터리 제조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전고체배터리'가 꿈의 배터리로 주목받는 것도 전해액과 분리막을 고체 물질로 대체함으로써 화학적 발화 가능성이 크게 줄고 배터리 밀도는 높아지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이 많다. 특히 전동킥보드의 경우 화재 위험성이 크다.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는 "전동킥보드는 원통형 배터리 60개가 직병렬로 연결돼 있어 열 폭주 지속 시간이 상당히 길어지고 재발화되는 경우도 많다"며 "산업통상자원부나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전동킥보드 인증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운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화재 발생 확률을 줄일 수 있을까. 먼저 가장 많이 제기되는 해법인 배터리 충전율 조절과 관련해선 대부분 전문가가 과충전·과방전을 막기 위해 적절한 충전율 범위를 제한해 전기차를 충전하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다. 전기차를 안전하고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충전량을 20~80%로 유지해주고, 밸런스 있게 충전하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 완속 충전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정기적인 배터리 안전 점검도 화재를 방지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국내에서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도입한 전자장치진단기(KADIS)를 사용하는 민간 검사소에서 배터리 점검이 가능하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구조상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정기 점검의 중요성이 높다. 이외에도 충전소 주변은 고압의 전류가 흘러 흡연 후 담뱃재는 큰 화재를 발생시키므로 금연이 필수다. 손에 물기가 있을 때는 충전소를 사용하지 말고 우천 시에는 실내 충전소를 이용해야 한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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