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다는 윤모씨(55)가 말했다. 2년간 안마원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업무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토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당시 활동지원사를 시작해 업무 범위를 제대로 안내받지 못했다는 윤씨는 “지난해 9월쯤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 추징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활동지원을 했던 이는 시·청각장애가 있는 분이었다”며 “그런 분이 어렵게 처음 가진 안마원이 팔리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고 장성일씨의 서울역 추모분향소에서 23일 만난 추모객들은 장씨 사정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장씨는 지난달 8일 의정부시청이 활동지원사로부터 생업을 조력 받은 것은 위법하다며 활동지원에 쓰인 지원금 2억여원 환수 방침을 통보하자 비관해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각장애인 추모객들은 장씨의 영정 앞에서 “살려고 했던 사람이 행정 때문에 결국 죽게 됐다”며 “활동지원 제도가 장애인의 특성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가 다녔던 서울맹학교 1년 후배인 이성수씨(43)는 장씨를 “꿈을 포기한 중도 시각장애인을 안쓰러워 하면서 적극 도와준 형”으로 기억했다. 이씨는 2008년 시각장애인이 돼 연극배우의 꿈을 포기하려 했는데 장씨가 직업재활 과정을 돕고 밥과 술을 사주며 꿈에 다시 도전하도록 도와줬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금 안마사로 일하면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다룬 연극을 연출하고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이씨는 “형과 같은 일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2019년 경기 김포에서 50대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활동지원 제도 위반으로 추징금을 맞고 자살을 시도했다. 올해 초 경기도 수원에서 전맹인 60대 시각장애인이 똑같은 일로 수천만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그는 “잊을만 하면 터지는 일이지만 바보처럼 착하던 형이 그런 일을 겪었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1인 안마사업장을 운영하는 김모씨(58)는 “장애인이 아닌 행정을 위해 만든 제도”가 참극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카드를 결제하는 것도,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쉽지 않은데 (정부는) 규정만 들이대며 활동지원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며 “우리는 평생 (장애)연금이나 받으면서 수급자로 살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이어 “활동지원 제도는 모든 장애인에게 획일적”이라며 “장애마다 필요한 지원이 다 다르지만 같은 기준을 일괄 적용하니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5년이 지난 뒤에야 2억여원을 추징한 의정부시청의 행정 조치를 비판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모씨(44)는 “시청에서 5년간 점검하지 않다가 갑자기 잘못이라고 하면 이 분으로서는 정당하게 일하다가 벌받은 것밖에 더 되느냐”며 “전적으로 관리부서의 착오를 개인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은 오늘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장씨에 대한 추모식을 연 뒤 “활동지원 제도 개선”등을 내용으로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